
그동안 재무 건전성 중심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던 공공기관의 지출 운용 방식이 내년부터 확장재정 기조로 변경된다. 돈을 풀어야 할 곳에는 과감히 지갑을 열어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달성을 돕는다는 목표에 따른 조치다.
2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1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2025~2029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의결할 방침이다. 정부는 재무 위험 기관에 대해 일률적 부채비율 목표를 담은 재정 건전화 계획을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도입된 재무 건전 플랜이 사실상 폐기되는 것이다. 대신 자율적으로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향후 공공기관들은 적극적인 재정 집행을 통해 국정과제 달성에 힘을 보태게 된다. 구 부총리는 25일 국회에서 “과감한 투자로 성과가 나면 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재정 운용 기조를 확장 재정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은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늘리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재무위험기관 재정건전화계획’을 도입했다. 재무구조 취약 기관에 대해 부채비율 200% 미만 또는 자본 잠식 해소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조치가 요구됐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후 재정 운영에 대한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면서 이 같은 기존 계획에 재평가가 이뤄졌다. 부채비율 목표를 일괄 제시하는 경직적 접근이 공공기관별 여건과 맞지 않아 오히려 경제 운용에 부담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판단이다.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알짜 자산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미 확장 재정을 선언한 정부 입장에서도 공공기관의 지출 확대는 필수적이다. 새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인공지능(AI) 확산, 에너지 고속도로 확충 등을 수행하기 위해 200조 원 이상의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공공기관들의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다는 자신감도 자리잡고 있다. 기재부는 9월 1일 발표하는 ‘공공기관 2025~2029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서 35개 주요 공공기관의 평균 부채비율이 2029년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추계했다. 최근 국제 에너지 가격과 유가가 안정세를 회복하며 주요 공공기관의 부채비율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전력의 부채비율은 국제유가 급등기였던 2023년 543%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497%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확장 재정 기조가 장기적으로 공공기관 경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의 한 공기업 관계자는 “최근 일부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듯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국제유가 하락에 더해 정부가 공공요금을 일부 인상해준 효과가 크다”며 “정부가 책임져야 할 재정 부담을 공기업에 떠넘겼다가 공공요금 인상이 지연되면 부채비율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공사채 발행을 늘려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장 채권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공공기관들에 대해 완만한 재정 확대를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부채비율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절대 부채 규모는 증가하고 있어 중장기적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재정건전성 역할은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강조했기 때문에 이 원칙은 계속 지켜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