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 문제가 바뀌었다. 채점 방식도 바뀌고 옆자리 수험생도 달라졌다. 그런데 한국만 모른다.
삼성전자 반도체 ‘초격차’를 일궈낸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은 ‘특수 국가’ 중국을 여전히 간과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의 성공 방식은 유효하지 않아 전방위 개혁이 필요하며, 그 시초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8일 오전 서울대 자연과학대 과학기술산업융합최고전략과정(SPARC) 총동창회가 연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에서 학술포럼에서다.
권 전 회장은 1985년 삼성전자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2008년 반도체총괄 사장,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7년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에 오르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 기존 방식으로 中 대응 못 한다
권 전 회장은 “한국은 성공의 저주에 갇혔다”라고 직격했다. “한국이 이 정도 성과를 낸 건 인류 역사에서 기적”이지만 성공은 거기에 안주하는 기득권을 낳았고, 정치·경제 제도가 세계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권 전 회장은 한국이 직면한 최대 변수로 ‘(정부 주도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중국’을 꼽았다. 그는 “반도체·철강·조선·휴대폰 등 현재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 중 한국에서 만든 건 하나도 없다”라며 “선진국이 만든 걸 한국이 가져와 훨씬 값싸고 좋게 만든 건 대단하지만, 점점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선진국 정답대로 하는’ 방식으로는 중국에 대응할 수 없다는 거다.
가장 큰 개혁 대상으로 ‘규제 시스템’을 지적했다. “미국은 안 되는 것 빼고 다 되는 ‘네거티브’ 시스템인데, 한국은 정부가 해도 된다고 정한 것만 하는 ‘파지티브’ 방식”이며, 이런 식으로는 모범생은 키울지 몰라도 새로운 발상이 안 나온다는 거다. 그는 이를 “우리나라가 정권마다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라고 짚었다.
“똑똑함 개념 안 바꾸면 계속 비효율”
이날 포럼은 권 전 회장의『다시, 초격차』출간을 앞두고 오종남 SPARC 명예교수와의 북토크 형식으로 진행됐다. 권 전 회장이 삼성전자 퇴임 후 집필해 베스트셀러가 된 경영서『초격차』출간 8년 만이다.
이날 유재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은 “한국은 지표상 선진국이지만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 그친다”라고 했고, 정운기 SPARC 총 동문회장은 “『초격차』 책을 다시 쓰는 권 회장에게 그 답을 들으러 모셨다”라고 말했다.
권 전 회장은 ‘똑똑한 리더’의 개념부터 다시 정의했다. 기존 한국 리더들은 대개 ‘똑부(똑하고 부지런함)’였으나, 이게 지금 비효율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보다 기계가 더 지식이 많으므로 지식보다 ‘지혜’가 많은 똑똑함”이 필요하고, “주말에 안 쉬며 몸이 부지런한 게 아니라 ‘머리’가 부지런히 생각해야 한다”고 ‘똑부’를 새롭게 정의했다.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대학의 기초 연구자와 만나 토론하고, 다른 분야 사람들에게 영감을 얻는 일이 자주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상사들이 옛날식으로 자주 직원을 불러 회의하고 자료 준비시키니 기업의 유능한 인재들이 생각할 시간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병철의 ‘사업보국’ VS 머스크 ‘화성 개척’
권 전 회장은 후배 경영자들을 위한 조언도 남겼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는 “이 사업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뚜렷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자의 ‘사업보국(事業保國, 사업으로 국가에 기여한다)’이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의 ‘화성 개척’ 같은, 단순하고 명확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에게는 “오너가 준 임무를 잘 수행해 신뢰를 얻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시간을 갖고 실력을 입증한 뒤 결정적인 때 오너를 설득해 사업 전략을 관철시키는‘회심의 한 방’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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