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실력파 J팝 밴드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비밀은 학교에 있다

2024-09-17

[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J팝 열풍이 심상치 않다. 국내에서 J팝이 인기를 얻으면서 ‘내한’ 공연을 오는 일본 가수도 잦아졌다. 일본 밴드의 전설로 여겨지는 ‘범프오브치킨’, ‘오피셜히게단디즘’ 뿐만 아니라 요아소비, 킹누 등 국내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일본 밴드도 늘었다. 국내 수요가 있는 J팝의 가장 큰 특징은 ‘밴드 음악’이라는 점이다. K팝 아이돌 음악이 주류인 한국에서 밴드가 ‘아이돌처럼’ 인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

일본 밴드가 인기를 끌자 최근 국내에서는 아이돌 밴드 육성이 시도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밴드가 탄생하고 활동할까? 일본에서 밴드가 육성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봤다.

#‘부활동’, ‘서클’ 통해 밴드 결성

일본은 동아리 활동이 공부만큼 중요하다. 공부보다 힘들다는 ‘부활동’과 그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서클활동’이 모두 동아리 활동이다. 예체능 위주로 구성돼 있는 탓인지 학교 동아리에서 결성된 일본 밴드도 많다. 오는 12월 7일 내한 공연이 예정된 일본 밴드 시샤모도 고등학교 경음악부에서 결성됐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노나카 아키라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다. 현재는 일본 최대 전자회사의 입사를 앞두고 있지만, 학창시절 그는 늘 음악과 함께 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매번 음악 부활동과 서클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키라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활동을 했다. 관악 합주부에 들어가 퍼커슨 등 타악기를 연주했다. 일주일에 1~2번은 합주부에 시간을 쏟아야 했다. 중학교부터는 난도가 올라갔다. 그가 속한 관악 합주부는 악명 높았다. 아키라는 아침·저녁마다 매일 합주부 연습을 해야 했다. 매년 대회도 나갔다. 고등학교 때도 합주부 활동을 했다. 친구들과 축제 준비를 하면서는 밴드도 결성하게 됐다. 아키라는 “대학에 입학해서는 경음악부 서클 활동을 했습니다. 부활동은 연습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계속하는 게 어려웠지만,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서클 밴드에 들어갔습니다”고 설명했다.

아키라는 ‘취미’로 음악 활동을 했지만, 그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난 지인들 중에는 데뷔한 뮤지션도 꽤 있다. 아키라는 “일본은 부활동, 서클활동이 굉장히 활발합니다. 보통 여기서 많은 뮤지션이 배출됩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부활동 출신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대학교 서클활동 출신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봇치 더 록! 쉘터를 가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일본 밴드들은 어떨까. ‘일본의 홍대’로 불리는 도쿄 시모키타자와에는 골목마다 라이브 하우스, 밴드 연습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생업을 병행하며 밴드 활동을 하는 이들은 이런 라이브하우스를 전전하며 공연한다. 유명세는 덜하지만, 실력은 출중하다. 범프오브치킨, 미스터칠드런, 글레이 등 밴드도 라이브하우스 출신이다. 기타를 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시모키타자와 거리와 이곳에 있는 라이브하우스 쉘터는 일본 애니메이션 ‘봇치 더 록!’의 배경지가 되면서 한국 관광객의 발길도 잡고 있다. 밴드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쉘터’는 필수 코스다. 매일 저녁마다 공연이 열리지만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다. 쉘터 공연 라인업에 포함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비즈한국은 지난 8월 17일 일본 도쿄 시모키타자와 쉘터에 방문했다.

이날 공연 라인업은 ‘너드 마그넷, 베란다, 파빌리온’이었다. 메인 출연자 너드 마그넷은 나름 인지도 있는 일본 록밴드다. 오사카를 주 무대로 활동하기 때문에 도쿄에서 이들을 보는 건 흔치않은 기회였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 쉘터는 너드 마그넷의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쉘터 관계자는 “쉘터에는 하루에 평균 100명 정도의 관객이 온다. 너드 마그넷이 공연한 17일에는 150명 이상의 관객이 온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업과 병행하며 활동…라이브하우스 덕분에 밴드 유지 가능해

너드 마그넷이 첫 앨범을 발매한 건 2019년이지만 활동을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보컬 스가다 료타는 대학교 부활동 경음악부에서 밴드를 결성했다. 이전까지는 삼촌에게 받은 기타를 독학하며 음악을 공부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료타가 밴드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이유는 ‘취미’로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학 공부와 함께 밴드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그러다가 취직할 시기가 왔는데, 저는 취직을 해서도 밴드를 계속했죠. 그게 10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너드 마그넷의 베이스 아코는 온전히 독학으로 악기를 배웠다. 그는 뒤늦게 밴드에 합류해 멤버가 됐다. 아코는 “음악 이론은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음악의 여러 곡들을 카피하고, 패턴을 익혔습니다. 귀로 먼저 듣고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아보면서 음악을 배우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매주 모여 연습을 한다. 주말에는 라이브하우스에서 공연을 하고 평일 저녁에는 연습을 하는 식이다. 소속사도 있다. 디스타임레코드(Thistime Records)가 이들의 일정과 앨범 제작을 담당한다. 우리나라 소속사와는 어떻게 다를까. 료타는 소속사가 사생활에 대해 간섭하는 일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소속사와는 실무적인 부분만을 논의합니다. 뮤직비디오를 언제 촬영할지, 투어를 언제 할지, 공연장을 어떻게 빌릴지 등 스케줄과 관련된 부분을 논의합니다.”

음악 장르, 앨범 컨셉은 어떻게 정해질까. 음악과 관련된 작업은 전적으로 너드 마그넷 멤버들의 몫이다. 주로 료타가 곡을 작곡하고, 작곡한 곡이 모이면 앨범을 발매할 논의를 한다. 소속사의 역할은 이때부터다. “저희는 주로 파워 팝 장르의 음악을 합니다. 이 장르로 컨셉을 잡고 활동하지만, 다른 밴드를 보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밴드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료타는 “저희는 오사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늘처럼 도쿄로 공연을 오면 교통비나 숙박비 등 비용도 많이 듭니다. 굿즈나 앨범 판매 수익도 있지만, 지금은 수입과 지출이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수익과 무관하게 활동 기회는 많다. 공연할 수 있는 라이브하우스가 도시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소속사 없이 자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베란다’와 ‘파빌리온’ 모두 마찬가지다.

약 10년 전에 결성된 밴드 베란다는 대학교 서클에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베란다 멤버들은 모두 생업이 따로 있다. 역시 주 1~2회 모여 연습하고, 주말에는 공연을 다닌다. 앨범을 발매하고 홍보를 하는 역할도 멤버들이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

4년 전에 결성된 신생 밴드 파빌리온도 대학교 부활동에서 만났다. 멤버들은 모두 음악을 독학했고, 대학에 와서야 음악을 배웠다. 이제 막 대학 졸업을 한 파빌리온 멤버들은 밴드 활동에 전념할지 취직할지 고민하고 있다. 다만 일과 병행하며 밴드 활동을 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가족들이 밴드 활동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란다와 파빌리온 멤버들은 입을 모아 일본 내 밴드가 자생하기 쉬운 구조라고 강조했다. 베란다 멤버들은 “일본에서는 밴드가 나오기 쉬운 환경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밴드 동아리가 많이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파빌리온 역시 “시모키타자와를 중심으로 공연할 수 있는 라이브 하우스가 많은 편입니다. 처음부터 규모를 크게 준비하면 힘들겠지만, 작게 시작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고 말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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