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초록 피부 마녀의 ‘미움받을 용기’

2024-11-21

환상적 마법 세계서 펼쳐지는

엘파바·글린다의 우정 이야기

세상 차별과 극복 과정 담아낸

성장 드라마로서 메시지 ‘주목’

21세기 최고의 뮤지컬 원작

사전녹음 아닌 촬영 중 라이브

생생한 감정선 깊은 울림 전해

돌비 사운드 특별관 관람 추천

마법의 세계 오즈의 먼치킨랜드 영주의 첫째 딸 ‘엘파바’(신시아 에리보)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 남들과 다른 그녀의 초록색 피부는 또래 친구들은 물론 아버지에게까지 차별당하며 사랑받지 못했다. 하지만 엘파바에게는 신비한 힘이 있다. 그녀는 남들이 가지진 못한 신비한 ‘마법’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직은 마음대로 튀어나오는 능력이라 처치곤란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언젠간 오즈의 마법사님께 꼭 자신의 능력을 보이리라 꿈꾸며 살아간다.

엘파바의 동생 네사로즈(마리사 보데)의 대학교 입학식에 참석한 그녀는 분노의 감정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마법 능력을 선보였다. 다른 학생들은 그녀의 외모와 능력에 놀라 멀리 피한다. 엘파바의 숨겨진 힘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쉬즈 대학교의 총장 마담 모리블(양자경)이다. 마담은 엘파바를 학교에 입학시켜 그녀의 재능을 키우기 위한 단독 수업을 진행한다.

엘파바는 자신과 전혀 다른 성격과 취향의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와 기숙사 룸메이트가 된다. 글린다는 공주병 기질이 다분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지녔다.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외면받는 엘파바는 인기 많은 글린다가 부럽지만 밉고 마법사를 꿈꾸는 글린다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엘파바가 얄밉다. 둘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밥맛’이라 부르며 매일 싸웠지만, 점차 서로를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친구가 된다.

오즈는 과거부터 인간과 동물이 모두 언어를 사용하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계였지만 최근 동물 차별이 확산되며 점차 동물들이 사라지는 걸 엘파바가 목격한다. 그녀는 글린다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제프 골드블룸)에게 동물들을 구해달라 요청하기 위해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그가 감춰온 비밀을 알게 된다.

영화 ‘위키드’는 동명의 뮤지컬의 1막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그려 20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영화의 뿌리인 뮤지컬 ‘위키드’는 그레고리 맥과이어가 1995년 발표한 베스트셀러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을 원작으로 한다.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의 내용을 비틀어 만든 2차 창작물이다. 뮤지컬 ‘위키드’는 2003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그래미상, 토니상 등 100여 개 어워즈에서 상을 수상하며 21세기 브로드웨이 최고 뮤지컬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 ‘위키드’는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서쪽 마녀 엘파바의 죽음을 기뻐하는 오즈 시민들의 축제로 막을 연다. 영화의 강점은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펼쳐진 오즈의 세계가 스크린에서는 무한한 세계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소설이나 뮤지컬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미지의 마법 세계가 판타지 장르와 합쳐져 넓은 스크린에서 펼쳐질 때 관객들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영국 노지에 900만 송이의 튤립을 직접 심어 만든 형형색색의 먼치킨 랜드, 58톤의 무게인 거대한 기차가 직접 움직이는 오즈의 세계는 황홀하다.

사전녹음이 아닌 촬영 중 라이브로 소화한 뮤지컬 넘버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점도 신선하다. 현장성은 물론 배우들의 감정선이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10살 때 브로드웨이 원작을 보고 인터뷰마다 글린다 역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하던 아리아나 그란데는 이번 영화로 그녀의 오랜 꿈을 이뤘다. 인기 넘버인 ‘파퓰러(Popular)’에서 그녀는 섬세하고 청아한 보컬을 선보이며 글린다 특유의 긴 금발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몸짓, 깃털 같은 춤사위를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아 표현해냈다.

그래미 뮤지컬 앨범상을 수상한 배우 신시아 에리보는 엘파바 역을 연기하며 힘차고 풍부한 보컬을 선보이며 영화를 보는 내내 귀를 즐겁게 한다. 영화에서도 최고의 장면은 뮤지컬 ‘위키드’를 전설로 만든 넘버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가 흘러나올 때다. 기다란 검정 망토를 휘날리며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며 중력에 벗어난 엘파바의 모습에서는 희열감이 느껴진다. 에리보는 하늘을 나는 와이어 액션과 노래를 함께 해야 했기에 러닝머신을 뛰면서 피나는 연습했다고 한다. 덕분에 완성된 그녀의 파워풀한 보컬은 관객들이 함께 빗자루를 탄 듯한 아찔한 기분까지 선물한다.

뮤지컬 넘버들을 온전히 즐기려면 돌비 사운드 특별관 관람을 추천한다. 더빙판도 놓치면 안 된다. 더빙판에서는 2013년 한국 라이선스 뮤지컬 ‘위키드’의 초연 배우였던 박혜나(엘파바)와 정선아(글린다)가 직접 참여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번역판의 가장 큰 메리트는 뮤지컬 위키드 한국 공연의 대본, 가사의 판권을 모두 구매해 그대로 가져온 점이다. 새로 번역을 하면서 가사 음절에만 맞춰 불린 더빙판의 어색함을 완벽히 없앴다. 기존의 뮤지컬 덕후들은 물론 영화로 처음 ‘위키드’를 접하는 관객들까지도 쉽게 영화에 공감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냈다.

뮤지컬적인 측면에서의 장점도 상당하지만 영화 ‘위키드’는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 이야기를 메인으로 하면서 그 안에 차별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아낸 성장 드라마로서 메시지도 주목해야한다.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놀림을 당하고 세상의 외면을 받아야 했던 엘파바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글린다를 통해 성장해간다.

자신이 믿었던 거짓과 새롭게 알게 된 진실 사이에서 헤매던 엘파바는 마침내 뜻을 정한다. “세상 누구도 놀림감이, 경멸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깨닫고 모두에게 미움받았던 소녀는 다시 한번 미움받을 용기를 낸다. 자신이 사랑하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엘파바’라는 이름 대신 ‘사악한 서쪽의 마녀(위키드)’라고 불리면서 자기의 길을 만들기 위해 두려움을 떨치고 날아오른다.

2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단 한번 시작하면 푹 빠져들 수밖에 없는 영화다. 이렇게 완벽한 ‘위키드’에 딱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2025년 개봉될 파트 2를 또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다림마저 설레겠지만.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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