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송현] 잘 심은 푸른씨앗, 열 자녀 안 부럽다

2025-05-14

한때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이 유행했다. 1970년대 늘어나는 인구가 부담이 된 정부의 가족계획 구호였다. 여기에는 자녀에게 노후를 기댈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돼 있는 듯하다. 그러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제는 자녀가 없거나, 있어도 노후를 기댈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기대 수명은 길어지고 자녀들도 살기 바쁜 만큼 국가가 국민의 노후를 걱정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온 것이다.

‘푸른씨앗’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애칭이다. 그런데 왜 민간이 대부분인 퇴직연금 시장에서 공적 기관인 공단이 참여하고 있을까. 민간 금융기관이 주로 대기업에 마케팅을 집중하고 중소기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 가입률이 낮은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노후소득보장이 더 절실한 중소기업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률이 오히려 더 낮은 소위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함이다.

푸른씨앗은 중소기업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3년간 수수료 면제와 함께 저소득 근로자(최저임금의 130% 미만)의 경우 사업주와 근로자에게 각각 부담금의 10%를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월 급여가 250만 원인 근로자에 대해 사업주는 1년간 부담금으로 250만 원을 납부하지만 지원금으로 25만 원을 돌려받고, 근로자의 통장에는 퇴직급여 250만 원과 지원금 25만 원이 추가돼 총 275만 원이 적립된다.

또 푸른씨앗은 기금형 제도의 특성상 공단이 책임지고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며 평균 수익률이 연간 6.5%로 민간 퇴직연금 수익률(2%대)을 크게 앞서고 있다. 특히 이 수익률은 푸른씨앗이 다른 공적연금과 달리 근로자 자산 보호라는 기치하에 채권 등 안정자산을 기반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돋보인다.

이 같은 장점에 힘입어 도입 2년 만에 사업장 2만 5000개소와 근로자 11만 명이 가입했고 기금 조성액도 1조 원을 훌쩍 넘겼다. 푸른씨앗의 급격한 성장은 민간 금융기관의 퇴직연금 기금화 전환에도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공단은 1일 퇴직연금국을 신설하고 푸른씨앗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워크숍과 학술 세미나, 거리 캠페인 등 다채로운 가입 촉진 행사를 통해 올해 안에 적립금을 2조 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푸른씨앗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30인 이하 사업장만 가입할 수 있어 사실상 더 취약한 근로자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기업 규모 제한을 완화하자는 다수의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플랫폼 노동자 등 사용자가 없는 중간 형태의 노무 제공자가 급증하고 있고 이들의 노후소득보장은 중소기업 근로자보다도 절실하다. 일정 소득 이하의 노무 제공자가 푸른씨앗에 가입해 정부의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면 노동시장 양극화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일하는 사람의 노후는 이제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대비해야 한다. 모든 것이 푸른색으로 가득한 5월 우리 노후를 위한 ‘푸른씨앗’을 심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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