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때 재일동포 간첩으로 지목돼 장기간 옥살이를 했던 고 최창일씨가 51년 만에 ‘간첩 누명’을 완전히 벗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14일 ‘재일동포 간첩사건’ 주범으로 지목돼 징역을 산 최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사건을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씨 측이 재심을 청구한 지 약 4년 11개월 만이자 최씨가 1974년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지 51년 만이다.
최씨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났다. 도쿄대학교 자원개발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한국의 탄광기업에 취업해 서울에서 근무하다 1973년 6월 육군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에 끌려갔다. 보안사는 최씨에게 간첩활동을 하려고 국내에 입국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최씨의 신문조서에는 ‘북한에서 지령을 받았다’ 등의 자백이 담겼다. 법원은 1974년 최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그는 최씨는 약 6년간 옥살이를 하고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돼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199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지난 5월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는 최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최씨의 ‘과거 법정진술’이 수사기관에 불법 구급된 상태에서 진술된 것이어서 “증거능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백 재판장은 무죄를 선고하기 앞서서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할 사법부는 그 임무를 소홀히 했다며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이 불복해 상고하면서 최씨에 대한 선고는 반년이 더 흘렀다. 대법원은 이날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최씨 측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드디어 고 최창일에게 새겨진 간첩이라는 주홍글씨가 벗겨졌다”며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검찰의 상고는 과거사정리법과 대검찰청 공안부가 스스로 만들어 일선에 배포한 ‘과거사 재심사건 대응 메뉴얼’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라며 “검찰의 2차 가해를 규탄한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검찰의 잇따른 불복 소송이 “또 다른 국가폭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족 측은 검찰의 항소가 인권침해라며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