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소봉대(針小棒大)'라는 말이 있다. 바늘처럼 작은 것을 몽둥이처럼 과장하는 것을 뜻한다. 사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이 왜곡되는 측면이 있다. 업무상 파트너나 소통하는 상대의 신뢰도가 낮을 때, 침소봉대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침소봉대를 하다 보면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도 많아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의정(議政) 갈등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의정갈등 해결 이후의 청구서가 걱정된다. 어떤 방식이든 진료비와 건강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책목표로 '진료비 지출 절감'이 더 고차원적이고 적절할 수 있다. 진료비 지출 절감은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의사의 업무량을 줄이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수요자(환자) 측면에서 예방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강화해 병원 방문 자체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부득이하게 병원 치료가 필요할 경우, 불필요한 과잉진료 없이 적정 진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1차·2차 의료기관을 최적화해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최소화하고, 동일 질환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의료 쇼핑'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둘째, 공급자(의료인) 측면에서는 의료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의사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업무를 제외하고는 역할을 분담해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인공지능(AI), 로봇, 간호사 등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들이 소극적으로 보인다. 우선 예방 중심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는 전문 영역이 아니다. 예방의학과 의사가 있지만 대부분 환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는다. 환자를 상대하는 임상 의사들에게 영향력도 크지 않아 보인다. 건강보험 수가가 현실화 되면 과잉진료가 사라질 수 있을까? 의료 쇼핑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은 하지만 병원 수입이나 환자 수 감소를 감내할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공급자 측면의 대책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AI 소문은 들었지만 '의사보다 더 잘하기야 하겠어' 내지는 '수가를 인정해야 AI를 도입'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교수들 입장에서 당직을 계속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고, 전공의도 근무 시간을 줄이길 요구하지만 간호사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이 확고하다. 모든 PA간호사가,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마음대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PA간호사가 확대되면 전공의가 돌아오더라도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 걱정한다. 비용을 줄이는 측면에서는 개원의들이 적극적이고 선도적이다. 간호사는 커녕 간호조무사에게 혈액 채취, 주사제 투약은 물론 수술 보조업무까지 맡기고 있다.
의대 증원 반대 논리로 강의실과 기초의학 교수, 해부학 실습용 카데바가 부족해서 불가능하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침소봉대 사례다. 다른 학과 강의실과 서울 소재 기초의학 교수의 온라인 강의를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지속할수록 의사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사람들로 각인될 수 있다. 의사를 늘릴 필요가 없거나 늘리기가 싫다면, 환자들에게 진료비 부담을 늘리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진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진정성있게 제시하면 좋겠다. 길고 긴 의정갈등에서 환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어야 한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前 서울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