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 수순에 접어들고 있지만 양상은 지난 3년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전투만큼이나 치열한 것은 내러티브 전쟁이다.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러시아의 내러티브는 서방의 국제법적 규범 및 가치 중심 담론과 충돌했고, 그 균형은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실은 감춰져 있고, 주류 언론은 믿을 수 없다"는 담론은 전시에 빈번히 등장하는 고전적인 의심 서사이며 이번 전쟁을 둘러싼 국내 담론에서도 점차 세를 얻고 있다. 유튜브와 대안 매체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이 흐름은 러시아 측 통계, 전장 체험, 선택적 영상자료 등을 인용해 숨겨진 진실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왜곡된 서사인가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없이 형성되는 내러티브는 정치적 방향성과 외교전략에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전쟁의 구조적 성격과 서사적 갈등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오해〉나토 팽창이 전쟁 원인이다?
〈진실〉러시아 팽창주의와의 충돌을 봐야 한다.
나토 동진이 러시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고, 군사적 대응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러시아의 핵심 전쟁 명분이다. 하지만 나토는 자발적 가입을 전제로 하는 방어적 집단안보 체제이며,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확장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 부쿠레슈티 회의에서 가입 가능성을 언급 받았을 뿐이며, 러시아의 반발을 우려한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로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가입을 추구한 것이고, 이는 주권국가의 자율적 선택이었다.
휴전 협상중인 우크라 전쟁
러시아측 주장, 진실처럼 확산
국내도 유튜브 등 통해 퍼져
비판적 분석으로 왜곡 막아야
더욱 중요한 것은 러시아 침공이 자국의 영향권 회복을 목표로 한 능동적 전략이라는 점이다.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등은 나토 비회원국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이는 러시아가 구소련 국가들을 자국의 영향권으로 간주하고, 이를 회복하려는 팽창주의적 전략을 추구해왔음을 보여준다. 2022년 침공은 국제법상 전쟁행위이며, 이를 서방 책임으로 돌리는 주장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는 정치적 프레임에 가깝다. 최대한 물러서서 보더라도 이 전쟁은 나토의 잠재적 확장과 러시아의 제국주의 세계관이 충돌한 전략적 선택의 산물이다.
덧붙여, 나토의 창설 목적을 설명할 때 종종 국내에서 인용되는 "러시아를 배제하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억제한다(Russia out, Americans in, Germany down)"는 문구는 1949년 당시의 전략 인식을 단순화한 표현이다. 나토 초대 사무총장인 라이오넬 이스메이 경의 발언으로 알려졌지만 1955년 서독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해당 표현의 적실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후 70년 동안 나토의 독일에 대한 입장은 '억제'가 아닌 '통합'으로 전환됐다.
〈오해〉미·러 대리전이고, 우크라이나는 이용당했다?
〈진실〉전쟁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미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결과다.
이 주장은 우크라이나를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놓인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면서 전쟁을 감내하고 있는 국민의 선택과 희생을 무시한다. 1991년 독립 이후 태어난 세대는 유럽으로의 통합과 민주주의를 삶의 방향으로 받아들였고, 2013~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은 그 의지를 보여준 결정적 사건이었다.
러시아의 침공은 이런 정치적·세대적 전환을 거부하는 반작용이고, 전쟁은 실존적 저항이다. 외교적 고립과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기기 힘든 전쟁"을 치르는 것은 주권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정치적 주체성을 지운 채 이용당했다는 시각만 남는다면 이 전쟁이 남긴 가장 중요한 진실을 놓치게 된다.

〈오해〉두 나라는 같은 민족이며, 분단 극복을 위한 전쟁이다?
〈진실〉우크라이나는 독립국을 원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21년 7월 크렘린 공식 웹사이트에 직접 기고한 에세이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일체성에 대하여』에서 두 나라는 하나의 민족이며, 분단은 외부 세력의 조작에 의한 인위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역사적 연속성을 오늘날의 정치적 종속 논리로 확장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뿐 아니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고, 지역별로 상이한 정치문화와 민족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특히 소련 시기 강제 이주와 1932~33년의 인위적 대기근은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와 반러 정서를 남겼고, 이는 독립 후 우크라이나의 분리 정체성을 더욱 강화했다. 같은 민족이란 주장은 감정적 호소일 수는 있어도 현실 정치의 기반이 되기 어렵다. 과거의 연대성은 협력의 토대가 될 수는 있어도, 군사적 침공이나 정치적 간섭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형제 민족'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상대 국가의 독립성과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시각은 제국주의적 사고의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역사적·민족적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전쟁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오해〉네오 나치세력의 러시아계 주민 탄압으로 개입은 불가피했다?
〈진실〉국제기구는 근거가 없다고 했고, 정치화된 선전이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나치와 동일시하는 '네오 나치' 프레임은 러시아의 담론이며, 크림반도 합병 이후 아조프 연대의 등장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아조프는 친러 분리주의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된 민병대였고, 초기 일부 구성원이 극우 상징을 사용한 사례는 있다. 그러나 이후 아조프는 국가방위군에 편입돼 정규군화 됐다.
유엔 인권이사회, 앰네스티 등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에 대한 집단적 탄압이나 조직적 인종주의 정책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또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집단 학살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네오 나치'라는 감정적 서사를 집요하게 반복하는 것은 이런 정치적 프레임을 통해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울러 2019년 언어법은 공공부문에서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의무화했지만, 이는 프랑스의 프랑스어법 등과 유사한 국가 정체성 보호 정책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으며, 러시아어 사용 인구에 대한 체계적인 박해는 확인된 바 없다.
〈오해〉서방의 오판과 초기 협상 실패가 희생을 불렀다?
〈진실〉러시아의 협상 조건은 실질적인 항복 요구였다.
러시아는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 비무장화, 나토 가입 포기, 러시아어 사용 인구 보호 등을 조건으로 협상을 제안했다. 이 조건들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위한 타협처럼 보였지만, 실제론 우크라이나 주권과 안보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내용이었다.
2022년 4월 이스탄불 협상은 종종 "놓쳐버린 기회"로 언급된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협상 중에도 수도 키이우 인근에서 군사작전을 지속했고, 부차 민간인 학살은 협상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또한 러시아가 제시한 안보 보장은 실행 가능성이 낮았고 조건 자체가 우크라이나 정치체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이스탄불 협상은 장기적 평화의 기반이라기보다는 일시적 봉합에 불과했고, 그것이 수용 불가능하다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평화는 타협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타협이 항복이 돼버리는 구조에서는 그것을 '기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오해〉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국민을 희생시키는 독재자다?
〈진실〉전시체제를 독재로 단정하는 정치적 왜곡이다.
2024년 대선이 실시되지 않은 점과 젤렌스키의 지지율 하락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헌법은 계엄령하에서 선거를 금지하고 있으며,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러시아 점령지에선 투표 자체가 불가능하고, 보안 위협도 여전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젤렌스키 지지율 4%'는 근거가 부족하다. 일부 피난민 대상 조사 결과를 제외하면 과반 정도로 하락했던 지지율이 최근 트럼프와의 회담 이후 국내 결집 효과로 상승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가 젤렌스키와 악연이 있다는 점이다. 2019년 헌터 바이든 스캔들을 둘러싼 통화 문제로 트럼프는 탄핵까지 직면했다.
정치학에서 권력의 무기한 집중, 권력 이양의 불가능성, 정치적 다원성, 시민사회와 언론의 비판 기능 여부 등이 독재를 구분하는 핵심 기준이다. 젤렌스키에 대한 정치적 비판은 가능하지만 이를 독재로 규정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와 정치적·도덕적으로 동일 선상 또는 그 밑에 놓으려는 시도에 가깝다.
〈오해〉우크라이나는 한국의 적성국가였고, 지원할 필요가 없는 부패한 국가다?
〈진실〉과거의 외교 행위와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우크라이나가 소련 측에서 파병하고, 유엔에서 대한민국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소련 체제 하에서 대리적 외교 행위일 뿐 1991년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와 직접 연결해선 곤란하다. 한국은 이후 우크라이나와 외교관계를 정상화했고, 경제 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왔으며, 이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일환이다.
부패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치명적 약점이긴 하나, 2013~14년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제도 개혁과 반부패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우크라이나는 모범적인 민주국가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를 이유로 일괄적으로 지원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외교를 도덕적 흑백논리로 환원하는 단순화이며, 전후 한국이 경험했던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원조의 역사와도 어긋난다.

〈오해〉"진실은 숨겨져 있다. 주류 언론을 믿지 마라?"
〈진실〉정보 검증이 아니라 정체성 충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서사다.
이런 담론의 문제는 이같은 정보 소비가 이념적 적대감이나 감정적 동일시에 기반한 선택적 믿음을 강화할 뿐, 사실 검증이나 정보 출처의 신뢰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쟁의 복잡한 현실은 흑백 구도로 단순화되고, 정보의 회색지대는 음모와 확증 편향의 공간으로 치환된다.
특히,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는 진영 간 통계와 서술이 상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 간극을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채우고 마치 진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방식은 흥미는 자극할 수 있지만 올바른 판단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은 각각 구조와 맥락을 따져야 할 해석의 대상이지, 곧바로 수용한 진실은 아니다.
나아가 외교를 둘러싼 정보 해석이 국내정치 갈등과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그것은 우리 사회의 판단력 자체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의 정보 기반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해석은 더 이상 '타자의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앞으로 어떤 국제질서에 설 것인지, 어떤 정보 감각 위에서 외교와 민주주의를 세울 것인지의 문제다.
이재승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