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가수 정현아의 지금이 ‘봄날이야’

2025-05-23

‘박사가수’ 정현아의 요즘은 그야말로 인생의 ‘봄날’이다.

정현아는 어린이집 재롱잔치부터 칠순 잔치, 송년회, 지역 축제 등 30년간 행사 MC로 무대란 무대는 다 휩쓸고 다닌 그야말로 ‘행사의 여왕’이다. 그는 레크레이션 강사로도 활동하다 운동학 박사까지 취득했다. 그런 그가 지난 2021년 앨범을 내고 가수로서 마이크를 잡은 지 어언 4년 차, 이제 막 이름을 알린 신인 트로트 가수가 됐다. 그는 최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스포츠경향을 만나 반 백살이 넘어 어릴 적 꿈을 이룬 지금이 인생의 봄날이라고 말했다.

■ “박사님이 왜 트로트 가수 해요?”

그는 2021년 10월 ‘봄날이야’를 내고 데뷔했다. 인생의 봄날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노랫말은 직접 작사했다. 그가 가수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코로나 19 당시에 사람이 모이지 못하니 행사 MC인 저는 한순간에 생계를 잃었어요. 그게 수년간 계속되니 불안했죠.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한 시간이었고, 그러다 어릴 적 꿈을 떠올렸습니다.”

경남 함양의 지리산 자락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풍족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홀로 키운 엄마는 밤마다 라디오를 틀고 눈물짓기 일쑤였다.

“엄마는 항상 울었는데, 내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니 엄마가 웃더라고요. 그래서 막 노래를 부르고 재롱을 떨었어요. 그러니 동네 사람들도 저를 예뻐했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들이 저를 동네잔치 무대니 동창회니 데리고 다니며 노래를 시켰고, 사람들이 손뼉을 치니 좋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내가 노래를 하니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했어요. 근데 현실상 가수가 될 생각은 못 했죠.”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군청에서 근무하다 결혼한 뒤 아이를 낳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어린이집에서 근무했다.

“미술이나 음악 등 여러 능력이 있는 정식 교사들을 보면서 저도 잘하는 게 있어야 겠다 싶어 동화구연 자격증도 따고 판소리 자격증도 땄어요. 어린이집 행사를 하면서 체육대회 행사 등에서 레크레이션하는 걸 보면서 ‘어 저런 직업이 다 있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레크레이션 진행자 자격증도 취득하게 됐죠.”

호감 있는 외모에 재치 있는 말솜씨, 흥까지 충만한 그에게 수많은 일이 쏟아졌고, 그는 MC를 직업삼아 활동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았다.

“말을 하는 직업이니 말을 하는 대회에 나가야겠다 싶었어요. 상을 받으면 내 프로필에 자랑할만한 수식어가 되지 않을까 싶었죠. 그렇게 ‘2010년 전국스피치대회’에 나가서 단번에 대통령상을 수상했어요.”

그의 용기와 도전은 그를 또 다른 곳으로 데려다줬다. 그의 대통령상 수상 경력이 스피치 강사의 길로 이끈 것이다.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스피치 강의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저에게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저는 일개 강사일 뿐 진짜 교수가 아닌데 교수님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발가벗겨진 것 같았죠. 그래서 진짜 학위를 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나이 마흔에 학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전문대를 거쳐 학사, 석사, 박사까지 무려 13년에 걸쳐 MC활동과 공부를 병행했다. 결국 그는 부산대학교 대학원 스포츠과학과 교수법 운동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행사장에 가면 의전부터 쇼 MC까지 다양하게 커버한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퀴즈를 내고 경쟁을 시킨 뒤 결국은 화합을 끌어내야 한다”면서 “인간 심리에 대해서도 배우는 등 학문적인 걸 겸비하니 더 좋은 진행자가 되는 것 같았다. 또 레크레이션 지도자들에게 강의하게 되니 진짜 ‘교수’에도 욕심이 나더라”면서 교수의 꿈도 꾸게됐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터진 뒤 레크레이션 MC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가뜩이나 좁은 채용문은 나이가 들며 더 좁아졌다. 그렇게 그에게서 교수의 꿈은 멀어졌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제가 인기 많은 MC였던 이유가 나름 노래를 잘해서였어요. 초대가수가 늦으면 노래하며 시간을 때우기도 하고, 초대 가수가 없는 무대에선 대신 노래도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죠. MC가수로선 만족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목 상태가 좋을 때 진짜 가수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적은 글로 노래를 내보자 해서 적어뒀던 노랫말을 들고 트로트계의 황제이신 박성훈 선생님을 찾아가 사정했습니다. ‘저는 생계형 MC입니다. 저에게 가수로서의 면허증을 하나 주시면 선생님의 존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행사의 여왕이었지만 가수되니 무대공포증 생겨”

무대에서 25년을 뒹군 행사의 여왕이었지만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은 너무나 다른 일이었다. 세상에, 그에게 무대 공포증이 생긴 거다.

“내가 왜 이러나. 충격을 받았죠. MC가수로 노래할 때는 가사를 잊으면 ‘아싸’ ‘오예’ 하면서 추임새를 넣으면 되는데, 가수는 그게 아니잖아요. 무대 공포증이 생겨서 ‘누가 앞에서 가사를 들고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나와의 약속, 그리고 작곡가 선생님에게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진짜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렇게 케이블 방송을 돌며 무대 공포증을 이겨낸 그는 많은 이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어엿한 트로트 가수로 성장했다. 지난 3월 24일 방송된 KBS2 ‘가요무대’에서 그가 부른 ‘여자의 일생’을 들은 관객이 눈물을 흘린 모습이 포착된 거다.

“‘여자의 일생’을 연습하며 저 역시 엄청나게 울었어요. 관객분이 눈물을 흘리시는 걸 보고 전율이 왔죠. 5월 26일 방송되는 ‘가요무대’ 에서는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데 그 노래는 엄마가 생전에 좋아하신 노래에요. 제가 어떻게 담아낼지, 관객분이 어떻게 들어주실지 설렘이 있습니다.”

친정 엄마 얘기를 꺼내던 그가 슬며시 눈물을 보인다.

“저는 가난했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컸습니다. 엄마의 사랑 만큼은 누구보다 풍족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제 아이들에게 제 엄마처럼 사랑을 많이 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금 제가 꿈을 이룬 모습에 아이들이 큰 지지와 응원을 보내줍니다. 딸은 제게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들은 제게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정현아는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라고 반문하며 “앞으로도 제 노래로 여러분의 슬픔은 반으로 줄이고, 기쁨은 두 배로 늘려드리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의 삶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조금씩 자신을 성장시키려 노력했고, 악바리 근성으로 도전했다.

“꿈이라는 것에 한순간에 다다를 순 없어요. 너무 멀리 있다고 꿈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넋 놓고 있으면 안 되고 현실에 순응하며 충실히 생활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꿈에 다가가 있더라고요. 가수를 하겠다고 달려온 것도 아닌데 어느새 제가 그 꿈에 닿아있습니다. 저의 ‘봄날이야’를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신대요, 요즘은 저에게 맞는 색깔·장르의 곡이 어떤 건지 찾아가고 있어요. 이제 가수라는 면허증을 받아 들었으니 안전운행을 하면서, 멀리까지도 달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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