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대림동에 방문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민들이 정착해 살아온 거리를 걸으며 역사를 배우는 지역탐방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영상 동아리 학생들은 방문 후기를 대화로 나누는 콘텐츠를 찍기로 했다. 그런데 회의 중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영상에 혐오 댓글이 달리면 어떡해요?”
주지하다시피 대림동은 중국 혐오 시위의 표적이 된 장소다. 학생들은 영상이 혹시라도 알고리즘을 타서 공격을 받게 될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드러내도 될까, 가면을 써야 할까, 이야기할수록 걱정은 커졌다. 그저 디아스포라 지역탐방 후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콘텐츠가 될 테고, 냉정히 생각하면 높은 조회 수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데, 모두들 순간 두려움에 압도되어 영상을 찍어도 될지 주저하고 있었다.
학생들만의 두려움은 아닐 것이다. 나도 차별에 관해 말할 때 움츠러드는 경험을 한다. 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차별, 장애인차별 등 각종 차별에 관해 의견을 말할 때, 비난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힘들지만 댓글도 본다. 사실 내게는 혐오 표현 자체가 연구 대상이라 그래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혐오 표현이란, 공포 외에 남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이주민에 관한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로 한 이유는,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지역과 이웃의 이야기를 담고자 함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2020년에 발간한 <주민과 이주에 관한 인권 중심 서사 만들기>를 번역해 읽고 나누면서 시작된 아이디어였다. 이주민을 비인간화하고 배제를 부추기며 폭력을 선동하는 서사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20쪽 정도의 이 짧은 책자는 인권 중심 서사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유엔이 제시한 인권 중심 서사를 만드는 일곱 가지 지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주민이 환영받고 존중받는 세상의 모습을 상상한다. 둘째, 인간성, 존엄성, 정의, 평등이라는 인류 공통의 가치를 통해 유대감을 만든다. 셋째, 살아 있는 이주민의 일상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넷째, 각자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이주민과 만나며 연결을 만든다. 다섯째, 다양한 청중을 고려해 소통의 통로를 다각화하고, 여섯째, 다른 소수자 단체를 비롯해 이주민에 관심 있는 여러 영역의 사람들과 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주민을 대상화하거나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언어와 서사를 피한다.
말하자면, 혐오를 부추기는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고, 인권과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토대로 우리의 서사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종종 잊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보편적인 인류애를 바탕으로 공존을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때때로 지나치게 차갑고 대립적이라 해결점을 찾지 못할 때,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안부를 통해 변화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혐오와 배제의 목소리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서도 안 되겠지만, 중간지점 어디에서 서성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인 나가라’는 구호로 뒤덮인 적대적 현장에 뛰어들어 ‘혐오를 멈춰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주배경을 가진 친구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고 쭈뼛거리며 말하는 중학생이 있고, 그 학생들의 고통을 돌보는 교사가 있다. 경기도의회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난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며 출생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대안적 서사가 중요하다고 혐오 표현을 무방비로 두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적절한 규제의 범위와 방법을 살피며 법제도적 조치를 강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주민을 범죄자로 묘사하며 추방을 외치는 구호가 민주사회에서 보호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중받으며 공존하기 위한 원칙이지, 어떤 집단을 표적 삼아 배척하고 폭력을 조장하는 행위를 보호하는 권리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누가 표현의 자유를 빼앗기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멸칭과 조롱과 폭력적인 언사로 도배된 혐오가, 인권과 평화와 공존에 관한 말을 위축시키고 있다. 국회의원과 공무원은 극우와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가 쏟아내는 혐오성 공격이 두려워 차별금지법이란 단어를 꺼내지도 못한다. 혐오가 공포와 윽박으로 공론의 장을 훼손한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이다. 혐오에 눌려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생각하고, 우리의 인간성과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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