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도, 세금도, 전쟁도 없는 나라가 있다. 인구 500여 명.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10분의 1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 국가. 그러나 이곳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정신적 권위와 도덕적 영향력을 지닌 국가다. 이 나라 수장의 한마디는 전쟁을 멈추게 하고, 소외된 이들을 비추는 빛이 된다. 정치 너머의 정치, 권력 너머의 권위를 통해 인간 존엄과 평화,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곳이다. 세상의 양심으로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의 든든한 벗. 이곳은 바로 바티칸이다.
여러 차례 무산됐던 교황 방북
이 대통령 최근 교황청에 건의
2027년 평양 미사 성사된다면
세계사적인 평화의 사건 될 것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가장 큰 도덕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다. 교황청은 무력이나 자본이 아니라 도덕성과 상징성, 종교적 신뢰를 기반으로 외교를 펼쳐왔다. 이 독립적이고 비무장 된 외교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중립적이며, 정치적 부담이 적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겠다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바티칸과 함께하는 모습은 국제사회에 개방과 변화의 제스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런 바티칸이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을 만난 이재명 대통령은 2027년 세계청년대회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레오 14세 교황의 방북을 건의했다. 가톨릭의 현안으로 세계청년대회 준비와 지원을 꺼낸 이 대통령은 유 추기경에게 한국을 방문하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유 추기경은 콘클라베에서 새 교황으로 뽑힌 레오 신임 교황에게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큰일을 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화답했다. 교황 방북의 불씨가 되살아난 것이다.
교황의 방북을 위한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여러 정권에서 교황의 방북을 위해 노력했다. 탈북 외교관 태영호에 따르면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북을 추진한 일도 있었다. (『3층 서기실의 암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교황의 방북이 논의되었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김 위원장이 교황의 방북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당시 청와대가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북미 정상회담의 파행 등 국내외의 많은 일들이 교황의 북한 방북을 힘들게 하였다.
이번에도 여러 변수가 있지만, 만약 교황이 북한을 방문해 평양에 있는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면 이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서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존재와 손을 맞잡는 선택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자신이 변화 가능성을 품은 나라임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가 될 것이다. 어느 한쪽을 편들지도 않고, 자기 이익을 챙기지도 않는 교황이라는 평화의 상징이 북한 땅을 밟는 순간은 그 자체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는 외교적 존재감을 회복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교회는 교황의 방북으로 북한에 종교의 자유를 모색할 수 있다. 중국과 바티칸 모델이 북한에 적용될 수 있다. 바티칸과 외교관계가 없는 중국에는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애국교회와 공산당의 통제를 거부하고 교황청을 따르는 지하교회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바티칸은 2018년 9월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에 서명하며 애국교회와 지하교회는 통합되었다. 지금은 중국 정부가 주교를 임명하면 교황청이 승인한다. 교황청은 중국 정부가 임명하는 주교를 받아들이고, 중국은 교황을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인정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중국 신부와 중국 수녀가 가톨릭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바티칸에서 사도직을 하고 있다. 로마에 유학 중인 중국인 신부가 200명이 넘는다. 바티칸에서는 교황의 메시지를 영어·이탈리아어와 함께 중국어로도 번역하여 홈페이지에 발표한다. 주교황청 한국대사였던 이백만 대사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으며, 공산당 내부에도 가톨릭 신자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한다(『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 이런 중국과 바티칸의 관계가 교황의 방북으로 북한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상처를 찾아 위로했다. 1984년에 방한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광주를 찾았다. 전남도청 앞과 금남로를 거쳐 미사가 열리는 무등경기장으로 갔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다. 제의에 세월호 배지를 달고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2027년 8월에 레오 14세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 이번에는 레오 교황이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넘쳐나길 기도한다.
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 보도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