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기름처럼 맑고 고소한 맛…중국서 퍼진 조선의 ‘최미’

2024-10-21

“저녁에 장역(張譯)이 소릉하(小凌河)에서 감동즙(甘冬汁) 한병을 사왔는데 맛이 아주 좋다고 하는 것을 듣고서 바로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 즙이 기름처럼 맑았는데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이 글은 1712년(숙종 38년) 11월에 사신인 ‘사은겸동지사(謝恩兼冬至使)’의 일원으로 베이징을 다녀온 김창업(金昌業, 1658∼1721년)이 쓴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에 나온다. 글을 쓴 날짜는 1712년 12월14일이다. 이날 사신 일행은 소릉하(랴오닝성 서부에 흐르는 큰 하천)를 지나 고교포(高橋鋪,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 후루다오시(葫蘆島市) 소재)에 묵었다. ‘장역’은 한어통역관 장원익(張遠翼, 1654∼?)이다. 장원익은 이날 저녁 늦게 김창업의 방에 찾아와서 소릉하에서 사온 ‘감동즙’이 맛있다고 알렸다. 그러자 김창업은 바로 가져오라고 해 맛을 보고 이 글을 썼다.

도대체 ‘감동즙’은 어떤 음식일까? 김창업은 이틀 전인 12월12일 일기에 “자하젓(紫蝦醢)을 파는 자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감동젓(甘冬醢)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젓 속에 담근 오이가 아주 컸다”고 적었다. 감동젓은 ‘자하젓’(사진)의 별칭이다. ‘자하(紫蝦)’는 갑각류의 한 종류로, 8쌍의 가슴다리가 있고 가슴다리의 각피에 아가미가 있다. 생김새가 새우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겨우 1∼2㎝에 지나지 않는다. 껍데기가 자주색이라서 ‘자하’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말로 ‘곤쟁이’라고 하며, 젓갈 이름도 ‘곤쟁이젓’이라고 부른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황해도 바닷가와 경기도 남양만에서 자하가 난다고 적었다. 그런데 김창업은 ‘노가재연행일기’ 서론에서 “대릉하(大陵河)와 소릉하의 감동젓은 맛도 좋고 흔하였다”고 적었다. 한반도 서해에서 주로 나는 자하가 중국 발해만의 제일 북쪽인 대릉하와 소릉하가 흘러드는 능해(凌海)에서도 잡힌다는 말이다.

김창업은 “그 즙이 기름처럼 맑았다”고도 했다. 1924년에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감동젓을 담그면 위쪽에 기름 조각이 떠오르는데 이를 ‘감동유(甘冬油)’라고 부른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고기를 지져 먹거나 육회를 먹을 때 이 감동유를 조금 떠서 먹으면 그 맛이 달고 고소한 것이 참기름 같다”고 했다. 감동젓에 귀하게 뜨는 감동유에다 돼지고기를 찍어 먹었으니 김창업은 대단한 호사를 누린 셈이다. 그것도 중국 땅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 맛을 ‘최미(最美)’, 곧 “참으로 맛있었다”고 적었다.

김창업은 귀국길이던 1713년 2월29일자 일기에서 “대릉하에 도착하니 거리에서 ‘감동’을 팔고 있는 사람이 갈 때보다 훨씬 많았다. 중국에는 일찍이 이런 물건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 유독 이곳에서만 이처럼 많고 흔하니 그 요리법은 틀림없이 우리나라에서 사로잡혀온 사람들에게서 나와 퍼진 것이다”고 했다.

지난 몇년 사이에 북미와 서유럽에서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K-푸드의 인기는 20세기 초반 이래 식민지와 전후의 가난을 피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위해서 해외로 이주한 한국인들의 노력이 밑바탕이다. 이민 간 분들은 세월이 흘러도 본인이 떠나올 때의 조국 모습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붙잡혀간 조선인들도 그랬을 것이다. 슬픔 중에도 조국에서 만들던 감동젓을 상품으로 판매해 생계를 이어갔다. 오로지 K-푸드의 인기에만 열광하지 말고, 조국을 떠나 갖은 고생을 다한 해외동포들의 고난도 함께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음식 인문학자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