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장애인들은 성당 종탑에 올랐나

2025-04-27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콰지모도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높은 종탑에 갇혀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간다. 장애인으로서 그에게 허락된 삶은 어둡고 좁은 종탑뿐이었다.

성금요일이었던 지난 18일,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이 서울 혜화동성당의 종탑에 올라 무기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사흘째인 4월20일은 부활절이자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십자가 위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는 날에, 왜 장애인들은 난간·지붕·화장실도 없는 종탑 위에서 하루 종일 내리던 비를 맞아야 했을까.

이 사태의 발단은 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이자 장애인 거주 시설 원장인 이기수 신부는 2023년 탈시설 반대 토론회에서 1급 지적장애인은 앵무새, 3급은 코끼리와 같다면서 지능이 낮으면 자립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17년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장애를 더는 급수로 나누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자립해서 잘 살고 있는 앵무새가 들으면 참 억울했겠지만, 이 신부의 주장은 확고했다. 시설을 운영하는 다른 천주교 신부들도 최근 몇년간 ‘탈시설로 장애인이 죽어 나간다’ ‘자립은 전체주의적 정책이다’라며 주요 성당의 주일미사에서 장애인 탈시설화 반대 서명을 독려해 왔다.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격리하는 과거의 방식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게 하자는 국제적 약속마저 외면하는 천주교의 언행은 단지 무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025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1500개의 장애인 거주 시설이 존재하며, 천주교는 이 중 175개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많은 신부가 시설장으로 재직하면서 시설의 운영과 예산 결정권을 행사한다. 이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 발리더티재단, 국제발달장애인연대 등 국제 장애계는 지난 24일 이번 고공농성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종교계 인사들에게 집중된 권력이 신앙의 이름으로 장애인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천주교가 한목소리로 탈시설을 반대해 온 것은 아니다. 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세계장애인의날에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사회 안에서 완전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가톨릭 교리의 근본인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고려한다면, 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전문가가 상주하며 24시간 돌봄을 제공하므로 시설이 장애인에게 좋은 환경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폐쇄적이고 불평등한 권력 구조는 인권침해로 이어지기 쉽다. 올해 2월 드러난 울산 북구의 태연재활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장애인 185명이 수용된 이 시설에서 생활지도원들이 상습 폭행을 자행했고, 한 달간 거실 폐쇄회로(CC)TV에 찍힌 폭행만 890건이었다. 폭행으로 거주 장애인의 갈비뼈가 두 개나 골절되고 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옆에서 거주인이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장면을 보고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못했다. 사방이 막힌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탈시설 지원 조례 폐지 등 탈시설화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래도 세상은 계속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올해 1월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시의 탈시설 정책에 따른 시설 퇴소가 장애인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립과 인권을 향상시켰다고 판결했으며, 지난 3월에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과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도 장애인의날이 지나갔다. 매년 이날이면 정부와 사회는 장애인의 인권과 사회적 통합을 약속하나, 콰지모도가 종탑에서 바라본 파리의 모습처럼 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여전히 좁고 멀기만 하다. 콰지모도가 종탑에서 내려와 세상 속으로 나아갔듯,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하루속히 웃으며 땅으로 내려올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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