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네덜란드는 언제나 ‘네덜란드적’이라는 사실을. 암스테르담에서도, 헤이그에서도, 나는 한국의 교통카드를 그대로 찍으며 트램과 지하철을 이용했다. 밀라노나 파리에서도 일부 대도시는 비슷하게 전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네덜란드는 중‧소도시까지 거의 모든 교통 인프라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처럼 부드럽게 연결돼 있었다. 이 일상의 편리함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정책과 사회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Amsterdam’이라는 지명은 원래 암스텔강을 막은 제방(Amstel+dam)에서 비롯됐다. 바다보다 낮은 땅에 살아남기 위해 네덜란드인은 협력하고, 제방을 쌓고, 수로를 만들고, 서로의 차이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이런 생활환경은 자연스럽게 “다른 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문화”를 만들었다.



17세기, 유럽 전역에 종교 갈등이 불타오르던 시기에도 네덜란드는 박해받은 타 종교인, 타 지역 상인,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탈출한 유대인, 신교·구교 갈등을 피해 온 프랑스 위그노, 정치적 이유로 망명한 지식인들… 이 땅은 ‘유럽의 피난처’였다.
나는 오늘날 네덜란드의 개방성이 결코 갑자기 생겨난 진보적 감성의 산물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 뿌리는 존재의 생존 조건에서 비롯되어 있었다.
네덜란드를 이해하는 핵심은 그들의 정책이 “금지”가 아니라 “관리”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성소수자 권리, 동성혼(세계 최초 합법화), 마약 정책(소프트 드러그에 대한 관리·통제 모델), 안락사 법제화(존엄사에 대한 국가적 승인)… 이 모든 제도는 ‘극단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되, 사회는 그 선택을 건강하게 관리한다”는 네덜란드식 현실주의의 표현이다.



금지와 처벌을 통해 억누르기보다는 현실에서 이미 존재하는 문제들을 제도 속으로 끌어들여 감시하고 조절하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 이것이 바로 네덜란드가 가진 냉정한 진보성이다.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는 종종 “지나치게 개방적”이라 말하지만, 그 본질은 오히려 합리성과 실용성에 가깝다.
물론 모든 것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이주민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갈등, 도시 빈부 격차, 마약 관광으로 인한 지역 문제, 기독교·이슬람권 이민자 간의 가치 충돌, 네덜란드는 이런 복잡성을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실’처럼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네덜란드는 문제를 덮어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어 법과 제도, 감시와 관리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한다. 이것이 네덜란드가 유럽 안에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온 이유다.
암스테르담 운하가 만들어내는 물빛, 헤이그의 정갈한 도심 풍경, 그리고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교통 카드 한 장. 이 소소한 일상 속 편리함조차 이 나라가 수백 년 동안 구축해 온 관용, 협력, 합리성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성소수자를 존중하는 태도도, 마약· 존엄사 같은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모두 그 철학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네덜란드는 스스로를 과도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문제를 인정하고, 논의하고, 관리하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는 나라다. 그 솔직함과 냉철함이, 내가 이 나라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권오기 여행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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