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교수가 본 ‘고대사 연구’ 나아갈 방향
한민족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 수십 년간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궤도를 돌고 있다. 한쪽에는 실증적 사료와 고증을 생명으로 여기는 정통 ‘역사학계’가 존재하고, 반대편에는 『환단고기』와 같은 비주류 텍스트를 받들며 약 1만 년 전 유라시아를 호령했다는 거대 제국 ‘환국’을 신봉하는 집단이 소수이지만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1만 년 전에 핀란드에서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한반도에 이르는 그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던 단일 국가가 존재했다는 주장을 과연 현대의 지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본·러시아·튀르키예 ‘위대한 과거’ 집착
그러나 이 논쟁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잊을 만하면 정치권에서, 혹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끈질기게 되살아난다. 2025년에도 여전히 낡은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이 기이한 현상은, 단순한 고대 역사의 논쟁이 아니다. 식민 지배와 전쟁, 압축 성장을 거치며 우리 내면에 각인된 깊은 ‘결핍’ 탓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절반에 갇힌 지정학적 폐쇄성, 그리고 중국의 역사로 편입되어가는 만주와 북한 땅에 접근할 수 없다는 현실적 좌절감이 더해졌다. 결국 ‘우리는 본래 대륙을 호령하던 거대 제국이었다’라는 환상은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과 단절된 현실을 잊게 해 줄 가장 손쉬운 방법이던 셈이다.
사실 ‘위대한 과거’에 대한 집착은 한국뿐 아니라 근대 이후 많은 나라에서 등장했다. 그리고 정치적 선동과 만났을 때 매우 위험한 도구로 변질되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일본은 자신들의 기원을 유라시아 전체로 확장하는 역사관을 ‘대동아공영권’에 투영하여 침략 전쟁을 정당화했다. 튀르키예의 ‘판투라니즘’이나 러시아, 불가리아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에서는 소련 붕괴 후 위서(僞書) 『벨레스서(Book of Veles)』가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이 책은 슬라브족을 고대 아리아인의 직계 후손으로 설정한다. 불가리아인의 위서는 3만년 전에 불가르인이 거대한 제국을 세웠고 슈메르같은 고대 문명에서 징기스칸까지 모두 불가르인이라 주장한다. 모두 원본은 사라지고 필사본만 남았다는 설정 등, 유사한 서사 구조를 갖는다. ‘검증 회피’ 전략의 전형이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명분 중 하나는 바로 2700년전 발달된 고대 스키타이 황금 문명도 있다. 러시아는 이 문화를 자신들의 배타적 유산이라 주장하며 영토 회복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며칠전인 21일에 푸틴 대통령이 독립국가연합(CIS) 정상회의를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개최하며 함께 스키타이의 황금 유물을 관람했다. 수천 년 전의 과거가 배타적 국수주의와 만날 때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를 넘어서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고대 거대 제국 담론을 단순한 흥미 거리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여전히 위서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기존 역사학계에도 있다. 바로 문자가 있는 기록에만 매달리는 ‘문헌 중심주의’다. 인류 역사의 99.9%는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다. 문헌에만 매몰되면 대부분의 시대와 공간은 알 수 없고 그 공백을 위서가 파고든다.

현대 고고학은 땅속의 증거들을 통해 ‘제국’이 없어도 인류는 충분히 ‘위대함’을 성취했음을 증명한다.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유적이 결정적인 증거다. 기원전 1만 년 전, 농경도 국가도 없던 수렵채집인들이 수십 톤의 돌기둥을 깎고 세워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있어야 거대 문명이 가능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발견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묶은 것은 거대한 제국이 아니라 빙하기가 끝나던 시점에 생존을 위해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었다. 황제의 명령이 아니라 ‘신앙’과 ‘교류’가 문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환단고기의 증거”라는 이야기가 일반인들에게 쉽게 파고들기 쉽다.
시선을 우리 역사로 돌려보자.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선사시대의 문명은 사뭇 달랐다. 우리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문 토기 이래로 북방 유라시아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한반도만의 선사시대를 열었다. 그러한 네트워크의 정점에는 청동기시대가 있었다.
중요한 건 영토의 크기가 아닌 ‘융합의 힘’

기원전 2000년경,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우랄 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서 발생한 ‘세이마-투르비노’ 현상을 일으킨, 당대의 하이테크 기술자 집단이 등장했다. 그 기술의 파동은 한반도로 이어졌다. 얼마 전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에서 3300년전 집자리에서 목걸이의 일부로 사용한 청동 장식이 발견된 것이 그 증거다. 이후 비파형동검으로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유라시아-한반도를 잇는 청동기 전통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기술 수용과 혁신의 정점은 국보 ‘다뉴세문경(잔무늬거울)’에서 확인된다. 기하학적 무늬 거울은 본래 유라시아 초원에서 시작되었지만, 한반도에 이르러 그 기술은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다. 지름 20㎝ 내외의 작은 원 안에 0.3㎜ 간격의 미세한 선 1만여 개를 새겨넣었다. 이는 현대의 기술로도 재현하기 힘든 초정밀 기술이다.

거대한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은 없지만 집약적인 기술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이 치열한 장인 정신은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는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상황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기술의 밀도가 문명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외부의 기술을 받아들여 더 뛰어나게 만드는 ‘융합의 힘’을 우리 역사는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유라시아와의 연결성은 신라의 황금 문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신라의 금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적인 유물이다. 특히 사슴뿔과 나무를 형상화한 디자인은 동시대 중국의 용이나 봉황 무늬와는 전혀 다르다. 대신에 유라시아 초원의 여러 곳에 비슷한 금관이 발견된다. 게다가 신라의 왕족은 자신들을 흉노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비문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신라인과 흉노는 직접적인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없다. 중요한 것은 ‘피’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당시 신라는 한반도 남동쪽에 고립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유라시아 초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훈족 계통의 황금 문화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대담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1500년의 시간을 지나 올해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도 그 의미는 빛을 발했다. 우리가 굳이 수만 리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이 아니어도, 세계를 잇는 중심이 될 수 있음을 경주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최근 중고교 교과서에서 고고학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우려스럽다. 인류 역사의 99.9%를 차지하는 선사시대와 유라시아 네트워크에 대한 교육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중은 ‘잃어버린 제국’이라는 자극적인 위서의 유혹에 더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보편적인 세계사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제2, 제3의 환단고기 논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 사회 주변을 겉돌 것이다. 이제 우리는 『환단고기』가 그린 지도 대신에 고고학과 첨단 과학이 보여주는 유라시아 고대사를 통해 세계사 속의 한국을 보여주는 교육이 필요한 때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 경로가 보여주듯, 우리는 북방의 기마 민족과 남방의 농경 민족, 대륙과 해양의 유전자가 섞이고 융합된 역동적인 과정에서 우리가 된 것이다.
우리의 역사가 위대한 이유는 1만 년 전에 광활한 영토를 가져서가 아니다. 800년 전 유라시아 전역을 정복한 몽골도, 그리고 100여 년 전까지 중국을 제패한 만주족도 지금은 너무 비교가 되지 않게 작아졌다. 진정 위대한 역사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하고,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드는 탁월한 ‘적응력’에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길은 과거의 제국을 꿈꾸는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다. 천 년 전의 신라처럼, 그리고 지금의 반도체 한국처럼, 세계와 연결되고 문명을 선도하는 ‘개방과 융합’의 길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역사의 자부심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학·석사, 러시아과학원 박사. 경희대 사학과 교수 및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소장이자 중앙도서관장이다. 유라시아와 고조선의 고고학을 주로 연구하며 우리의 과거를 좁은 한반도의 틀을 벗어나서 넓게 보고자 한다.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유라시아 역사 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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