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전국 곳곳에 보석같은 문화 자원…‘로컬100’으로 관광 활성화”
“‘정몽규 축구협회장 4연임 불허’…국민 여론 엄중하게 여겨야”
‘역대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2008년 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자리를 지킨 유인촌(73) 장관에게 따라붙은 수식어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초대 문체부 장관에 임명돼 저작권 보호 강화, 문화 예술 지원 체계 개편 등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지난해 10월 문체부 장관 자리에 다시 올랐다.
유 장관은 11월 5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확산 등으로 16년 전에 비해 문화 창작·유통·소비 환경이 크게 변했고,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 소멸 등의 사회적 변화도 문화 정책에 있어 주요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며 “변화를 반영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선제적 정책과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의 틀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유 장관은 “공직에서의 마지막 소명으로, 국민 모두가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문화 체육 관광 정책을 세울 것”이라며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 노벨상 수상 관심, 독서 진흥으로 이어져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 관심이 독서 진흥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 축제, 독서 진흥 캠페인 등을 확대해 국민들이 책을 많이 읽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생각이다. 한강 작가 사례를 참고해 보면 해외 진출 확대를 위한 정책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해외 번역·출판 지원이었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해외에서 번역·출판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번역·출판 지원 확대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 한글이 모국어가 아닌 사람도 작품 본연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하려면 번역의 품질이 중요한 만큼, 우수한 번역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재외 한국문화원은 각국 현지에서 자체 도서실 운영, 일반 대중 대상 강연, 독서회·도서전 등 행사 개최, 서점·도서관 등 유관기관과의 협업 등을 통해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문화원에 한국 문학 소개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고 세미나, 강좌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해 우리 문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현지 서점, 작가 단체 등 유관기관과도 협업해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문체부는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한국방문의 해’를 지정했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코로나19로 침체됐던 방한 관광의 조기 회복은 물론 K-컬처와 관광을 융합해 관광 콘텐트의 다변화와 관광 지출 확대를 유도했다. 지정 첫 해인 지난해에는 캠페인을 해외에 홍보하고 방한 외래객을 대상으로 환영 주간 운영, K-컬처 체험 특전을 제공하는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올해는 본격적 인바운드 관광시장 활성화에 따라 K-팝, 뷰티, 지역축제 등과 연계한 대형 관광 이벤트를 연속 개최해 외래객 유치와 방한 관광 매력도 제고, 소비 증대를 유도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10월 ‘한류 관광 페스티벌’에 외래객 1만 명을 유치하는 등 한국관광공사 해외 지사, 재외 한국문화원, 여행·항공·숙박업계와 협업해 방한 관광 활성화에 힘쓰는 한편, 지난 1월 코리아그랜드세일을 계기로 항공권 17만 건을 선판매하고, 6월에는 코리아뷰티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여행·쇼핑 등 유관업계와 협업해 관광 지출 확대를 도모했다.”
지역 관광 활성화 등을 위한 ‘로컬100 사업’에도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안다.
“지방 소멸이 화두인 시대다. 지역별로 특화된 문화는 주민들이 지역을 사랑하게 하는 힘이자 내외국인의 방문을 이끄는 매력 자산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역만의 고유한 역사적, 문화적 토대 위에 창출된 문화 명소, 콘텐트, 명인 100개를 선정한 것이 ‘로컬100’이다. 전국 지자체와 국민발굴단의 추천을 받아 461개 후보군을 구성해 심사를 거쳐 지난해 10월 최종 선정했다.
저도 매월 전국의 로컬100을 직접 찾아 방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보석같은 문화 자원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더 많은 분이 지역을 찾아 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특색 있는 문화 콘텐트를 널리 알려 갈 생각이다.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
최근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관광특구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촉진 등을 위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을 시·도지사나 특례시장이 지정하는 제도다. 그동안 지정 요건 중 하나인 관광시설 기준을 문체부령으로 정하도록 했었는데, 이 권한을 지방에 이양했다.
이번 개정으로 관광시설 기준을 시·도 또는 특례시의 조례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 지역의 관광 여건에 맞게 관광특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아울러 중국은 외래 관광객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다. 지난해 8월, 6년 반 만에 중국 단체 방한 관광이 재개되면서 단체 관광객 비중이 지난해 5.5%에서 올해는 23% 이상까지 상승했다. 최근 방한 트렌드가 개별 관광객 위주로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단체 관광객 비중이 높은 시장이다. 그에 따른 시장 질서 정립, 고부가화, 지방 방문 증대 등이 중요한 정책 과제인 이유다.
중국 단체 관광객은 1998년 중국 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문체부 장관이 지정하는 중국 전담 여행사만 담당할 수 있다. 지침에 따라 운영되던 이 제도를 관광진흥법에 근거를 보다 명확히 둬 제도를 더욱 실효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여행업 시장 질서를 해치는 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분 권한이 강화된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유커 회복·K-콘텐트 수출 지원 앞장설 것”
배우 출신인 만큼 문화 예술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안다. 관련해 K-콘텐트 수출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들었다.
“2022년 기준 콘텐트 산업 매출액과 수출액은 각각 151조2000억원, 132억4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다.
특히 콘텐트 수출액은 2차전지(100억 달러)나 전기차(98억 달러) 분야를 넘어섰다. K-콘텐트 소비 증가로 해외에서 벌어들인 문화예술저작권 무역수지 또한 지난해 약 11억 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러한 성과는 K-콘텐트가 창의성과 함께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두루 갖췄기에 가능했다. 창작자·콘텐트기업과 같은 민간 부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지난 9월 30일 ‘제1차 K-콘텐츠 수출협의회’를 열고, K-콘텐트 및 연관산업 수출 확대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문화기반 조성을 바탕으로 수출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우선 콘텐트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해외비즈니스센터를 내년까지 30곳으로 확대한다. 일본 도쿄에 콘텐트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기업지원센터도 운영할 예정이다.
신흥시장 개척을 위한 ‘K-콘텐츠 엑스포’를 진행하는 등 각 콘텐트 장르별 해외 마켓 진출도 적극 지원한다. 특히 전 세계인이 K-콘텐트를 비롯한 한류를 접할 수 있도록 내년 6월 ‘Beyond K Festa’라는 이름의 종합 한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K-콘텐트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정부가 최선을 다해 책임지고 지원하겠다.”
‘한류산업진흥 기본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도 했다.
“한류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음에도 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법령이 없는 상태였다.
법 제정을 통해 처음으로 ‘한류’를 법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한류의 진흥과 한류산업 및 한류연관산업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문체부는 한류 주무 부처로서 향후 한류산업 및 한류연관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범부처 협업을 지속하는 한편, 관련 산업 지원책을 조속히 추진할 계획이다.”
국내에선 연예기획사와 문화예술인 간 위계에 의한 불공정 계약이나 불투명한 회계 처리 등의 관행도 여전하다.
“지난 2022년 말 가수 이승기와 기획사 간 수익 배분 등에 대한 법적 분쟁이 있었다. 소속사의 불투명한 회계처리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난 계기였다.
문체부는 이 같은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대중문화산업 분야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전면적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대중문화산업법령 개정을 추진했다. 불공정행위에 대한 문체부 장관의 조사권 신설과 기획사의 정기적 회계 내역 제공 의무를 부여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법률안이 지난 9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4월 23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K-콘텐트가 세계적 수준에 이른 만큼 공정한 토대에서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예술인 권익보호에 우선순위를 두고 현장에서 제도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살피겠다.”
“대중문화산업 불공정 행위도 정상화 추진”
콘서트나 프로 스포츠 경기 입장권 위주로 암표가 성행하면서 소비자 피해도 커지고 있다.
“올해 공연법,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매크로를 이용한 부정 판매가 불법으로, 처벌 대상이 됐다. 하지만 프로야구나 인기 가수 공연 때 여전히 암표가 성행하고 있다. 매크로를 이용한 부정 판매만 처벌 대상이 되다 보니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적으로 실효성 있는 암표 단속 및 제재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공연법을 비롯한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 아울러 대체불가토큰(NFT)과 같은 신기술을 활용한 예매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암표 방지를 위한 여러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문화 예술계 전 분야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각한 상황이다.
“공연 예술 분야에서 해결해야 대표적 과제가 장르별·지역별 편중 문제다. 뮤지컬의 경우 대중의 큰 인기에 힘입어 해외 진출과 투자까지 가속 성장을 이어가는 반면, 국악·한국무용·현대무용 장르는 가장 우리다운 창작이 가능한 장르임에도 관객들의 선택을 덜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체부는 이 같은 편중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와 규모의 공연 작품을 대상으로 지역 유통을 지원해 지역민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동시에 비인기 장르도 여러 차례의 재공연을 통해 대표 레퍼토리를 발굴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다.
아울러 그동안 서울에 집중됐던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공연을 확대하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 단체를 지자체와 함께 육성하는 지역대표예술단체 지원 사업을 확대하는 등 지역 공연 예술계 창작 환경을 지속 개선하겠다.”
자진 입대한 BTS 멤버들이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전역한다. 파리 올림픽 이후 병역특례 제도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는데…
“예술·체육요원이 일정 기준에 따라 보충역으로 편입돼 각자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국민들의 예술 및 체육활동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고의 기량을 지닌 우수한 예술가나 스포츠 선수들이 중단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진 점을 감안해 편입 기준 개선, 공익 복무 관리 강화 등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제도 개선 방안을 관계부처와 논의해 나가겠다.”
체육계 현안 얘기도 해보자.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축구협회, 배드민턴협회 등 체육계 전반에 걸쳐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대한체육회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한 기존 체계가 ‘자의적 예산배분’으로 변질된 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또한 체육 단체장의 조직 사유화와 체육단체의 정치 조직화 등으로 체육계 내부 자정능력이 상실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문체부가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감사와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사무검사 등을 진행한 이유다.”
“한국 스포츠 재도약 위한 뒷받침 힘쓸 것”
내년 1월 열리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를 앞두고 정몽규 회장의 4선 도전과 관련해 “시정 명령을 내릴 것이고 어렵다면 승인을 불허할 것”이라고 국감장에서 밝혀 화제가 됐는데…
“'정몽규 축구협회장 4연임 불허' 발언은 언론과 국회에서 제기된 의혹과 문제점,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한 것이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그가 4선에 도전한다고 하더라도 축협 감사를 통해 감독 선임의 불공정성 등이 밝혀졌고 이외에도 위법, 부당한 사항이 확인되는 경우 회장으로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공정하다면 연임 심의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학교·생활·엘리트 체육 분야도 확실히 정리하겠다고 했다.
“학생 체육활동을 촉진하고 체육 교과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문체부와 교육부, 지자체 간 협력이 더욱 진전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학교 운동부 지원 강화, 초등학교 1·2학년 체육 교과 분리 대응,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 등과 관련한 더 나은 대안을 만들겠다.
7월 4일부터 차관급으로 운영하고 있는 ‘문체부-교육부 학교체육 정책협의체’가 이러한 협업의 일환이다. 생활체육 관련해서는 정책의 체감도가 미흡하고 중앙·지방 간 정책이 분절적으로 추진돼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라 대한체육회를 통해 지역에 지원했던 생활체육 예산 중 일부인 415억원을 내년부터 지방 협력사업으로 전환해 지역 여건에 맞는 프로그램 운영 및 예산의 효율성과 투명성 강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엘리트 체육은 종목 단체가 중장기적 비전을 갖고 스스로 저변을 확대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겠다. 둘째, 국가대표 훈련 관련 성과 중심 원칙을 확립하고 스포츠과학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체계를 개편할 예정이다. 또한, 차세대 국가대표 지원 인원과 종목을 대폭 늘리는 한편, 경기력별 차등 지원을 추진해 저변을 튼튼히 하겠다.”
장관 재임 중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우리 문화가 세계 최정상을 향해 얼마 남지 않은 지점까지 왔지만, 그 꼭대기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예산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내년 문체부 정부 예산안은 7조1214억 원으로, 올해 대비 1669억원, 2.4% 증가했다.
다만, 내년 정부 전체 예산에서 문체부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1.05%에 불과하다. 2026년 예산은 1.5%, 이번 정부 마지막 해에는 2% 정도로 예산을 확대할 수 있길 희망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 문화가 세계 무대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