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제트엔진 세기·방향 조절
공중서 균형 잡기 세계 첫 성공
재난 지역 수색·구조 활용 가능

사람처럼 머리와 상·하체, 팔다리를 갖춘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이 야외에 홀로 서 있다. 미동도 없이 그저 서 있기만 한 탓에 ‘걷는 시범이라도 보이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휴머노이드 발 근처가 들썩인다. 그러더니 머리를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 방향으로 몸통이 수직으로 떠오른다.
떠오른 높이는 50㎝, 공중에 머문 시간은 3초 내외였다. 올해 초 이탈리아공대 연구진이 실시한 ‘비행 휴머노이드’ 시연이다. 동력은 몸통에 장착한 제트엔진에서 얻었다. 언뜻 보기에는 별것 아닌 시험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최초로 하늘을 나는 휴머노이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휴머노이드는 느릿느릿 걷는 일조차 겨우 해냈다. 성능이 시원찮아 인간 실생활에 도움을 줄 만한 역할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걷기나 뛰기는 물론 공중제비, 권투 시합, 창고 정리, 요리까지 거뜬히 해낸다. 몸통을 제어하는 정밀도와 속도가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유독 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비행이다. 기술적으로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이 이번에 해결된 것이다.
중량 70㎏ 몸통 ‘두둥실’
이탈리아공대 연구진은 이달 중순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자신들이 개발·제작한 로봇 ‘아이론 큐브3’ 비행 소식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연구진은 아이론 큐브3 시제품을 일반에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몸에 달린 제트엔진을 켜는 모습만 보여줬다.
사실 아이론 큐브3가 달성한 ‘비행 고도’ 50㎝는, 고도라고 선뜻 부르기에는 멋쩍을 만큼 낮기는 하다. 하지만 줄에 매달리거나 펄쩍 뛰는 것이 아닌, 자체 동력으로 지구 중력을 뿌리치고 공중으로 떠오른 휴머노이드가 처음 탄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행 휴머노이드’ 세계를 열기 위한 확실한 시작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론 큐브3에는 양쪽 어깨에 2기, 양손에 2기 등 총 4기의 제트엔진이 장착됐다. 제트엔진은 대형 무인기와 비슷한 힘인 1000N(뉴턴)의 추진력을 토해낸다. 아이론 큐브3 몸무게는 70㎏, 키는 약 1.2m다. 연구진은 “원격 조종으로 움직임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아이론 큐브3와 비슷하게 생긴 휴머노이드는 지금도 차고 넘친다. 휴머노이드에 붙일 만한 소형 제트엔진 역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아이론 큐브3에 세계 첫 비행 휴머노이드라는 명찰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팔다리 각도까지 감지해 자세 제어
사람 몸통을 닮은 휴머노이드는 공중에서 균형 잡기가 지독히 어렵다는 점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비행 중 나타나는 자세 변화에 따라 아이론 큐브3에 달린 제트엔진 4기의 추진 세기·방향이 실시간으로 조정되는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이 기술이 왜 중요할까. 사람 몸통은 전체적으로 길쭉한 데다 표면이 고르지 않다. 이 때문에 비행 중 전후좌우로 마구 흔들리기에 딱 좋다. 팔다리도 문제다. 비행 중 팔과 다리를 어느 방향으로 뻗고, 얼마나 구부리고 펴는지에 따라 몸통 균형이 순식간에 변한다. 이것을 제어 못하면 바로 추락이다.
연구진은 이런 악조건을 인공지능(AI)으로 해결했다. 아이론 큐브3 몸통을 타고 흐르는 공기 흐름을 파악하는 풍동 실험을 했고, 각종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려 자세 제어용 AI를 개발했다. 이 AI가 제트엔진의 분사력과 방향 등을 조절한다.
AI는 제트엔진 4기가 동시에 켜지지 않아 추진 세기와 방향이 뒤엉키거나 비행 중 파손 등으로 아이론 큐브3 무게 중심이 갑자기 변해도 정상 비행이 가능하도록 고안됐다.
연구진은 “아이론 큐브3는 재난 지역에서 수색·구조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위험하거나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공중에서 살피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