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산업재해 사고를 질타하면서 지난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법의 양형 기준이 없어 집행유예가 남발되는 점을 지적했을 정도. 하지만 양형 기준을 정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6월 말 전체회의에서 중대재해법 양형 기준 신설을 논의했지만, 최종 대상범죄로는 선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판례 너무 적어” 양형 대상서 제외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책임자가 안전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법이다. 현재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집행유예가 기본이고, 피해 규모가 크면 징역 1~3년 정도의 실형이 1심에서 선고될 수 있지만 2심에서는 집행유예 선고’가 어느 정도 전망치로 자리 잡은 상황. 하지만 구체적인 양형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노동계에서는 “법원이 기업 편을 들어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대법원 양형위에 관심이 쏠린 배경이다. 양형 기준은 범죄 유형별로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대법원이 정해 두는 일종의 기준으로 일선 판사들이 판결할 때 반영된다. 무조건 따라야 할 의무는 없지만, 양형 기준에서 벗어난 결정을 할 경우 그 이유를 판결문에 적시해야 한다. 합리적 사유 없이 이를 지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건들이 양형 기준 안에서 판단이 내려진다. 거의 모든 판사가 양형 기준 확인 후 유사 사건을 검색해 다른 사건에서 나온 선고 결과와 맡은 사건을 비교, 경중을 따져 양형을 정한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 소속 독립위원회인 양형위원회도 지난 6월 말 전체회의 때 중대재해법상 징역형과 근로기준법 위반범죄(임금 등 미지급)의 양형 기준 신설·수정 안건을 논의했다. 하지만 최종 대상범죄로 선정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지난 3년 사이 나온 사건 규모가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양형위에서 근무한 바 있는 한 법조인은 “정치권에서 중대재해법 사건에 관심이 많은 것은 맞지만, 아직 판례가 너무 적어 지금까지의 판례만 가지고 양형 기준을 정해버리면 앞으로 나올 다양한 사례를 다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법원 양형위도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및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에 따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가 심사 중이고, 다른 범죄 군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양형 사례가 축적되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언론에 이유를 밝혔다.
#올해 안에 양형 기준 신설될 가능성
다만 이재명 정부의 노동 사고 기업 책임 확대 기조는 대법원 양형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잇따른 산재 사고 관련, 중대재해법을 거론하며 “대부분 집행유예 정도로 끝난다”며 “안전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익을 얻는 주체와 실제 처벌을 받는 주체가 괴리돼 있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법 총괄 부처인 법무부 수장 정성호 장관도 국무회의에서 “법원에 양형 기준이 없어 법원 양형위원회에 양형 기준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이르면 올해 안에 중대재해법의 양형 기준이 신설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형 로펌에서 노동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의 경우 판례가 너무 적고 기업 측의 과실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기소를 위한 입증까지도 오래 걸리고,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기소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며 “다만 이재명 정부가 산재 사고에 강하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니 법원도 이에 화답하는 맥락으로 ‘실형 강화’ 방향의 양형 기준을 정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앞서 양형위 근무 경험이 있는 법조인 역시 “판례가 적으면 적은대로, 양형 기준을 일단 넓게 잡고 판례가 더 쌓일 때 이에 맞춰 손보면 된다”며 “결국 징역 1년 이상이 법에서 정한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규모가 큰 대기업이 아닌 이상, 1심에서 실형이 나는 경우는 조금 늘더라도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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