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고에 의한, ○○고를 위한 ○○고 전용 수학 수업이 개설됩니다. 학사 일정, 시험 범위, 수업 자료, 내용, 방식, 강사까지 모든 것을 ○○고 맞춤으로 준비했습니다. ○○고 1~2등급 학생은 모두 우리 학원 출신이 돼 있을 겁니다.”
지난달 경기도의 한 학원이 모 고교 전용 수학 내신 반을 개설하며 광고한 이 문구가 현실이 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학원이 출제한 예상 문제가, 한 고교의 수학 과목 문제에 70% 이상 유사하게 나온 것이다. 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졌지만, 학원 측은 “적중률이 높았을 뿐”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유출 의혹이 불거지게 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학교 내신 기출, 학원에 수년 치가 쌓여있다
학원 측은 “해당 학교의 역대 기출 문제를 입수, 분석한 결과 EBS 교재 등 외부 교재에서 출제되는 경향을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비슷한 문항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학원이 특정 학교의 내신 기출 문제를 분석하고 유사 문제를 만들어 파는 일은 이제 비일비재해졌다. 수시모집 비중이 커지고 내신 성적이 중요해지며 학원들도 내신 대비 경쟁에 나서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교사는 “사건이 터진 일반고의 경우 인근에서 명문대를 보내기로 유명한 학교”라며 “시험이 어렵게 나오고 학생들 대부분이 50점 이하의 점수를 받는 등 내신 경쟁도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학원으로 학교의 내신 문제가 흘러 들어간다. 이강훈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은 “교사는 낼 수 있는 문제 유형에 한계가 있는데, 오히려 강사들은 몇 년 치 내신 문제를 다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 교사는 “영어 등 답이 딱 떨어지기보다는 해석상의 이견이 발생하는 과목의 경우 교사가 가르친 대로 출제를 해도 다른 논문을 가져와서 재시험을 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며 “알고 보면 학원에서 코치를 받아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공한 2020~2024학년도 1학기 관내 고등학교 지필고사(중간·기말고사) 재시험 현황에 따르면 321개교에서 지난 5년간 2435건의 재시험이 치러진 것으로 집계됐다. 재시험 사유로는 문항 오류(정답 없음·복수 정답 등)가 2136건으로 가장 많았다.
온라인에선 족보 거래도…“상대평가 유지되면 불가피”
온라인에서는 특정 고교의 ‘족보(기출문제)’가 거래되기도 한다. 기출문제와 유사한 문제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광고하는 A 사이트의 경우 “AI(인공지능)가 문제들을 심층분석 해 우리 학교 문제와 유사한 맞춤 족보를 만들어준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이 사이트가 만든 문제 다수가 실제 학교에서 출제된 문제와 유사하다는 시험지 인증 샷도 올라와 있었다. 또 다른 B 사이트의 경우 기출 문제를 업로드 한 이에게 포인트가 쌓이고 이를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남보다 1점이라도 더 받아야 좋은 등급을 받는 상대평가 구조에서는 성적 조작, 시험지 유출 의혹 등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강훈 실장은 “상대평가가 유지되는 한 교사는 문제를 더 어렵게 낼 수밖에 없고, 학원에서 많은 문제를 풀어본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내신의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고, 이것이 교사 부담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