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말 안 듣는다” 때리고 굶기고… 인권 침해 시설 200곳 넘는다 [심층기획-‘시설’, 그곳에 장애인이 산다]

2025-05-25

(1회) 스러지는 장애인

뼈 부러져도 치료 못 받아 … 사망자 절반 50세 전에 숨져

생활지도원 등 종사자의 학대는 물론

장애인 사이의 폭언·폭행 발생도 빈번

협소한 공간 탓 분리 지원 어려워 문제

병원서 먼 시설·상주의사 없는 곳 많아

발목 골절에도 한 달 넘게 방치된 40대

뒤늦게 입원했지만 면역력 악화 사망도

“잔상이 사라지지 않아요. 자식 일이라 도저히 떨칠 수 없네요.”

박영숙(68·가명)씨는 지난해 11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참담한 광경을 마주했다. 소중한 아들이 무참히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박씨의 아들은 40대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가해자는 아들을 돌보던 20∼30대 생활지도원들이었다.

박씨는 당시 울산북부경찰서로부터 “아드님이 학대를 당한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들이 머물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태연재활원에서 생활지도원들이 거주인들을 학대하는 사건이 불거지자,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시설 폐쇄회로(CC)TV를 통해 폭행 사실을 확인하고 박씨에게 연락한 것이다. 경찰이 보여준 영상 속에서 아들은 일반인도 견디기 힘든 학대를 당한 정황이 여럿 드러났다. 생활지도원은 전화기와 키보드를 들고 아들을 수차례 때렸다. 돌려차기로 복부를 가격하거나 넘어뜨리기도 했다. 심지어 목을 조르는 모습도 포착됐다. 박씨 아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2∼3세 지능의 아들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했다. 경찰이 한 달 치 CCTV를 살펴본 결과 박씨 아들이 폭행당한 것만 9차례에 달했다.

그날의 악몽으로부터 6개월이 지났지만, 박씨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25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사건 이후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편이다. 자다가 일어나도 아들이 맞는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매주 병원을 찾아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며 “체중이 무거운 아들을 넘어트리는 걸 보면 유도를 배웠나 생각이 들 정도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을 겪었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울먹였다.

시설 장애인을 향한 종사자의 학대는 태연재활원 사건 외에 더 있다.

본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최근 5년(2019년~2024년 8월) 지자체별 장애인 학대 발생시설 조사 결과 통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조사 결과 학대로 판명된 시설 수는 238곳(중복 포함)에 달한다. 2020년 경기 가평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거주인이 말을 듣지 않거나 대소변을 자주 본다는 이유로 폭력을 가하고 밥양을 줄이는 식으로 학대를 저질렀다. 경기 남양주의 거주시설에서는 수년간 신체적?정서적 학대와 성폭력까지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가 반복돼 시설 폐쇄를 앞두고 있다.

◆언어폭력 6.9%·신체 폭력 5.5%

태연재활원에는 박씨 아들 외에도 학대 피해를 겪은 거주인이 많았다.

울산 최대 규모 거주시설인 태연재활원에서는 지난해 10∼11월 20명의 생활지도원이 중증장애인 29명을 수백 차례 폭행하는 집단 학대가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폭행으로 갈비뼈가 부러진 장애인도 있다. 경찰은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생활지도원 16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4명을 구속했다.

거주시설 장애인들은 이처럼 학대 등 인권 침해의 굴레 속에 고통을 겪고 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에 비해 종사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인권 침해가 반복되는 것이다. 돌봄이 방치되거나 관리가 부실해 발생하는 건강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거주시설 상당수는 열악한 환경 탓에 한 방에 5∼6명의 중증장애인이 모여 산다. 발달장애의 행동특성 및 욕구를 표출하는 일상 속에서 거주인 간 폭행 사고도 흔하다. 공간이 협소하고 총인원이 많은 시설의 경우 폭력이 발생해도 분리 지원이 어려운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인권 침해는 정부의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거주인 중 언어폭력을 인지하거나 경험했다는 응답은 6.9%(1500명 중 103명), 신체 폭력은 5.5%(1507명 중 83명)에 달했다. 다만 이는 ‘응답 불가능’ 등을 포함한 것으로, ‘예’와 ‘아니요’로만 구분했을 경우 언어폭력은 11%, 신체 폭력도 8.7%로 집계됐다. 10개 시·도의 거주시설 84개소를 대상으로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조사에는 거주인 2125명, 직원 1768명이 응답했다.

언어폭력의 주요 행위자는 시설장 3.4%, 직원 6.9%, 거주인이 89.7%였다. 발생횟수는 ‘거의 매일’이라는 응답이 75%, 주 3~5회가 25%로 조사됐다. 신체 폭력의 행위자는 거주인이라는 응답이 83.9%, 직원 12.9%, 시설장 3.2%였다. 거주인들이 한 방에 여럿 모인 만큼 장애인 사이에 폭언과 폭행 등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생활지도원의 거주인 집단 학대가 발생한 태연재활원에서도 거주인 간 폭행 및 학대도 잇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태연재활원 인권지킴이단의 2022년 2분기 회의록에 따르면 시설에서는 2021년 거주인 간 신체적 폭력을 101명이 겪었고, 언어적 폭력 피해는 38명이었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최소한의 인력을 주고 지역사회로부터 차단된 공간을 꾸려 중증장애인들을 돌보게 하는 만큼 종사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통제의 모습을 갖게 된다”며 “집단생활에 가장 취약한 것도 민감도가 높은 발달장애인이다. 한 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서로 가해하게 되고, 이를 통제하려면 또 다른 폭력이 일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한 달간 골절 방치 후 숨진 동수씨

거주시설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폭력과 폭언에 그치지 않는다.

돌봄 방치로 인해 건강 관리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태연재활원에서 발목 골절 상태로 한 달 이상 방치된 박동수(45)씨는 두 차례의 수술 이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해 지난 5일 숨졌다. 병원 치료를 위해 지난 1월 퇴소한 지 4개월 만이다.

박씨 어머니 손모(71)씨는 “병원에서는 ‘골절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뼈의 진액이 다 말랐다’고 소견서에 적을 정도로 골절 정도가 심각했다”며 “수술도 어렵고, 6주 이상의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박씨는 두 번의 수술과 장기적인 입원으로 면역력이 급격하게 약해져 폐렴까지 앓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는 ‘와병’ 생활을 이어오다 하늘로 떠났다.

손씨는 “골절이 오래된 상태라고 들었을 때 시설에 대한 분노가 컸다. 그래도 아들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눈물을 터뜨렸다. 누나 박모씨는 “동수가 있던 방에서 학대가 심각했다고 한다. 보살핌이 제대로 이뤄졌겠는가”라면서 “동생이 제명을 못살았다는 생각에 생지옥이 따로 없다”고 했다.

거주시설에서 사망한 입소장애인은 절반이 50세가 되기 전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의 ‘최근 5년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장애인 사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20~2024년)간 거주시설 입소장애인 사망자는 총 1440명이다. 이 중 절반인 734명이 49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특히 20대 사망자가 157명(10%), 30대 사망자가 216명(15%)으로 집계돼 이른 나이에 숨지는 비율이 높았다.

전체 사망자 중 대다수가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병사로 사망한 장애인은 1240명으로, 86.1%를 차지했다. 질식, 낙상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외인사’는 31명(2.1%), 사인 불명의 ‘기타 및 불상’은 169명(11.7%)이었다.

거주시설 장애인들은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복지부의 인권실태조사 결과, 아프거나 다쳤을 때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의료 미충족률은 11.7%에 달했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응답도 9.7%였다. 거주시설에 입소한 영유아 및 아동의 경우 개월 수에 해당하는 예방접종을 전혀 받지 못한 비율은 20.8%로, 일반 영유아·아동의 2배가 넘는다.

시설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 1명을 최소 인력으로 두고 있다. 또 촉탁 의사를 한 명씩 배치하는데, 상주하는 게 아니라 월 2회 이상 시설을 방문해 진료를 시행하는 정도다. 특히 촉탁의가 정신과 등 특정 진료에 특화될 경우 내과?정형외과 등 다른 진료 과목을 돌보기 어렵다. 거주시설 장애인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의료서비스 접근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송효정 피플퍼스트 사무국장은 “간호사가 거주인을 살핀다고 하지만, 직접적인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시설들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다. 날을 정해서 건강검진을 가는 정도”라고 전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를 구하기에 앞서 간호사 채용도 어려운 현실이라 간호조무사를 채용하는 길도 열어뒀다”며 “예산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의사를 선발해 급여를 주는 것도 마땅치 않다. 지역 병원을 연계해 진료를 보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방식으로 입소장애인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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