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더중플-33년 경찰의 '크라임 노트'
매일 반복되는 사건·사고는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우리 삶 깊숙한 곳과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가 났다’는 사실 너머엔 삶과 범죄 사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경계에서 ‘정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형사의 고뇌와 고충이 존재합니다.
‘이 선택이 옳은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길은 무엇인가’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걸어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사건은 그들에게 단순한 수사를 넘어선 질문과 감정을 던집니다.
33년 경찰의 '크라임 노트'는 더중앙플러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1화. “한강에 바람 쐬러 가자”

몇 해 전 6월 어느 날, 이른 더위 속에서도 강바람은 차가웠다.
그날 오후, “둔치에 빈 휠체어가 버려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그저 또 하나의 ‘자살’ 사건일 거라 생각했다.
현장은 인적이 드문 둔치 가장자리, 빈 휠체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슬리퍼 한 켤레가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휠체어의 주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강으로 이어지는 비탈길 위에는 미끄러지듯 쓸린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은 마치 누군가 스스로 강물 속으로 향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한강경찰대와 함께 둔치와 강물을 동시에 수색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 하류 근처에서 한 여인이 물 위에 엎드린 채로 발견되었다. 여인은 발견 즉시 인양됐지만 이미 숨이 끊긴 상태였다.
그녀는 곧바로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고 검시(檢屍)가 이뤄졌다.
6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여성.
깡마른 체형에 헐렁한 잠옷 차림.
그녀의 신원을 증명할 단서는 없었다.
몸에는 특별한 외상은 없었고 사인은 익사(溺死)로 추정됐다. 지문 채취를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그녀는 서울 ○○동에 거주하던 68세, 이경자(가명)씨였다.
그날 밤, 한 남성의 112 신고가 수사팀을 긴장시켰다. 신고자는 숨진 이경자씨의 사위였다.
늦은 저녁 경찰서에 숨진 이경자씨의 딸, 정영란(가명, 39세) 씨가 출석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영란씨의 얼굴에는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
차 한잔을 건넸다.
그녀에게는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딸에게 짐이 되는 게 고통이었던 어머니
이경자씨는 요로상피암 말기 환자였다.
수차례의 항암 치료에도 병세는 악화됐고, 끝내 치료 불능 판정을 받았다.
남편은 이미 10년 전 세상을 떠났고, 그녀 곁엔 딸 영란씨 하나뿐이었다. 영란씨가 결혼하면서 그녀는 홀로 지냈고, 몸이 점점 움직이지 않게 되자 경기도 모 지역에 살던 영란씨가 그녀를 돌보기 위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녀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진통제 없이는 밤을 넘기기 어려웠고, 잠들지 못한 새벽마다 이경자씨는 딸 영란씨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곤 했다.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이, 딸에게 짐이 되는 것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암세포는 폐로, 간으로 전이됐다.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미래는 막막했다.
이경자씨와 딸 영란씨는 점점 지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경자씨는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딸 영란씨가 차려준 밥을 조용히 먹었다.
그러곤 말했다.
영란씨는 그 말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통증이 심할 때마다 어머니 경자씨는 말했다.
“한강에 가서 죽고 싶다….”
영란씨는 어머니에게 말없이 하얀 양말을 신겨주고, 휠체어에 태웠다. 택시를 불러 타고 한강 근처에 도착해, 휠체어를 밀며 둔치로 향했다.
(계속)
‘존속유기치사’
딸에게 적용된 이 죄.
단순한 이 죄명 뒤의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두 사람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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