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칼럼] ‘케데헌’의 성공, 결국 세계관이다

2025-08-10

진정한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을 수용하는 데서 비롯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 아닐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글로벌 1위와 음원 차트 최상위권을 여전히 휩쓸고 있다.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는 타이틀곡 ‘골든’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13년 만에 K팝 최초로 1위를 탈환했다. 이 곡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도 관심거리다. ‘기생충’과 ‘미나리’의 계보를 잇는 문화적 반향이 될 수 있을까?

‘강남스타일’의 흥행에는 말춤이라는 신명과 해학이 있었다. 그렇다면 케데헌을 세계로 밀어 올린 힘은 무엇일까? 단지 ‘골든’의 폭발적 고음과 역동적 리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컵라면, 김밥, 설렁탕 같은 K푸드, 도깨비와 저승사자 마스크를 쓴 악령들, 그리고 귀여운 호랑이 캐릭터까지, 이 모든 요소가 시선을 사로잡지만 보다 근본적인 성공 요인은 따로 있다. 바로 노래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세계관이다. 단순히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을 건드리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 주효했다.

케데헌은 선으로 덮인 악, 완벽주의 뒤에 가려진 취약성을 끄집어낸다. 악과 다름없는 취약성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지를 묻는다. K팝과 K컬처가 ‘세계관’을 통해 다시금 국경을 넘어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줄거리는 기묘하면서도 직관적이다. 인기 K팝 걸그룹 헌트릭스의 멤버들이 악령 퇴치에 나선다. 퇴치의 대상은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로 설정됐다. 멤버들은 은밀한 능력을 활용해 팬들을 위협으로부터 지킨다. 다소 뻔하게 들릴 수 있는 ‘노래로 세상을 치유한다’는 설정인 셈이다. 하지만 ‘낮에는 아이돌, 밤에는 헌터’로 살아가야 하는 이중 정체성은 K팝 스타에게 주어진 숙명을 암시한다. 겉으론 늘 빛나야 하지만 그 이면에는 버거운 윤리적 사명과 팬에 대한 묵직한 책임이 뒤따른다.

이 작품의 중심엔 루미가 있다. 그녀는 악마의 ‘패턴’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간다. 그녀를 길러낸 기획자는 끊임없이 그 패턴을 감추라고 강요하고 루미는 완벽한 모습만을 유지하려 애쓴다. 실수는 곧 실격이 되는 세상. 결국 루미는 버티다 무너지고, 마침내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대중 앞에 드러낸다. 취약함을 감추는 대신 끌어안는 용기를 택한 것이다. 그 순간 영혼의 방패 ‘혼문’이 탄생하며 악귀는 영원히 봉인된다. 케데헌은 진짜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된다고 역설한다.

그렇기에 케데헌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취약함, 연대, 치유라는 보편적 키워드를 세계관으로 직조한 철학적 콘텐츠다. 이 가치가 골든을 비롯한 곡의 가사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쾌한 해학으로 세상을 사로잡았다면 케데헌은 감정의 진실성과 서사적 밀도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놀라운 점은 이 보편적 세계관이 동시에 매우 한국적이라는 점이다. 극단적 경쟁,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 완벽주의, 수치에 대한 두려움. 이는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내면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케데헌은 이를 직시하며 그 너머로 나아가자고 손 내민다.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완벽해야 할까? 누군가의 실수는 왜 곧장 비난의 대상이 되는가? 케데헌은 이 질문들에 직접 답하진 않는다. 대신 나락을 딛고 다시 ‘업, 업, 업’ 찬란히 빛난 루미를 통해 그 답을 암시한다.

이 초대형 기획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해 온 한국계 캐나다인 메기 강 감독과 프로듀서들, 목소리 연기를 맡은 한국계 배우들, 그리고 작곡가 이재를 비롯한 토종 아티스트들의 힙한 감각이 절묘하게 결합되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단지 ‘멋진 콘텐츠’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로 승화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케데헌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문화적 거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더 많이 보고, 더 깊게 듣게 된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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