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민법 제781조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혼인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자동으로 아버지의 성이 붙는다. 아이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려면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느냐’라는 칸에 ‘예’라고 기재하고 협의서도 제출해야 한다. 혼인신고를 할 때 이 협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 성을 물려주려면 이혼을 하고 다시 혼인신고를 하거나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을 바꾸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05년 호주제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 폐지됐지만 아버지의 성을 ‘기본’으로 물려준다는 민법 조항은 그대로 남았다. 어머니 성을 따를 때만 특정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 그것도 출생했을 때가 아닌 혼인신고 때 ‘사전 협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차별이라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호주제 폐지 20년이 되도록 이 조항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대표(31·사진)는 2021년 3월 이 민법 조항이 ‘혼인·가족생활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 등을 위배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헌법소원 사건은 같은 해 4월 전원재판부에 회부됐지만, 4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변론 한 번 거치지 못하고 헌재에 계류돼 있다. 지난해 기준 헌재의 평균 심판 처리기간(724.7일)의 2배에 달한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 시절이던 2022년 10월25일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부성우선주의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서를 냈다. 형제자매간 상이한 성으로 인한 괴리감이 생길 수 있고, 가족관계 내에서 성이 갖는 전통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위헌성이 없다는 취지다.

▶[플랫 입주자 프로젝트] 아직도 공고한 부성 우선주의, ‘엄마 성 쓰기’는 어디까지 왔을까
이 대표는 지난 16일 인터뷰에서 “법무부가 반대를 위한 궤변을 짜냈다고 생각한다”며 “형제자매간 성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라면 부부가 합의해 어머니 성으로 통일할 수도 있는 문제다. 당시 법무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 나오면서 수립된 정권 기조에 반대하기 어려워서 이런 의견을 냈다고 본다”고 말했다.
24일 김상환 헌법재판소장과 오영준 헌법재판관이 취임하며 헌재는 9개월만에 재판관 9명으로 구성된 ‘완전체’가 됐다. 비상계엄 등으로 인한 탄핵 사건들도 대부분 종료됨에 따라 국민 기본권을 구제하는 헌재의 본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이 대표는 정권이 바뀌고 헌재도 재편된 만큼 전향적인 판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문제는 젠더갈등 이슈도 아니고 결코 과격한 주장도 아니다”라며 “‘아이가 꼭 엄마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게 아니라 출생할 때 성을 협의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헌재가 과거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듯 사회를 리드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부터 부성우선주의 폐지에 동의하는 시민들로부터 탄원서를 받아 헌재에 제출할 계획이다.
헌법소원 절차가 지연되는 사이 이 대표는 아이를 낳았다. 이제 100일이 갓 지난 아기는 엄마 성을 물려받았다. 만약 아이가 나중에 자신의 성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하겠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아빠 성을 물려받은 것처럼, 너도 특별한 이유 없이 엄마 성을 물려받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엄마에게 어떤 이유가 있어서 엄마 성을 물려준 것이 아니라, 엄마 성과 아빠 성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 중 엄마 성을 선택한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