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년 역사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도 이른바 ‘로봇 심판’,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가 도입될 예정이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지난 5일 “2026년부터 ABS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선수들은 대부분 로봇이 자칫 야구장의 ‘사람 냄새’를 지워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은 12일 MLB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 2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선수 134명에게 “로봇 심판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라고 물었고, ‘아니오’라고 답한 선수의 비율이 63.4%에 달했다. ‘예’라고 대답한 선수들은 17.2%에 불과했고 ‘모름’은 19.4%였다.

매체는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들어봤다. 야구장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제거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심판에 대한 존중, 심판과 선수의 유대감 역시 경기의 일부인데 ‘인간성 없는’ ABS는 이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다.
내셔널리그의 한 투수는 “왜 인간적인 요소를 없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투수는 “선수와 심판이 동지애를 가지는 기분이 좋다. 나도 공을 잘 던지고 심판이 정확한 판정을 내려서 같이 좋은 경기를 만드는 게 진짜 야구다. 로봇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는 한 선발 투수는 “심판들이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면 나도 그 경기에서 공을 던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포수의 프레이밍 기술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ABS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프레이밍은 포수의 능력을 가르는 핵심 기술 중 하나다.
한 포수는 “지난 15년간 해온 모든 노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고 다른 포수는 “스트라이크를 훔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했다. 한 투수도 “포수의 역할은 공을 받아 프레이밍하는 것”이라며 “ABS는 포수가 하려는 모든 것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ABS가 경기 흐름을 크게 늦출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타자 입장에서는 날아오는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경기 자체가 훨씬 덜 공격적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한 투수는 “ABS를 도입하면 경기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고 팬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인플레이 타구는 줄어들고 경기 시간만 길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프로야구(KBO)처럼 ABS로 모든 공의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주로 판정하되 선수나 팀이 원할 때 ABS 확인을 요청하는 챌린지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MLB의 구단과 선수들, 팬 모두 ‘절충안’인 챌린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훨씬 컸다고 한다.
챌린지 시스템이 도입되면 ABS를 둘러싼 지금의 우려는 일부분 털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선수는 ‘디애슬레틱’에 “중요한 순간에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경기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판정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결국 모두가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