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늘고 배기량 줄었는데…‘자동차세는 제자리’

2025-08-12

자동차 엔진 기술 발전으로 고가 수입차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산차에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자동차세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 보급 확대 되면서 친환경차 보급 목표와 자동차라는 재산 과세 성격을 동시에 고려해 장기적인 안목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된다.

11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자동차세는 2021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7조6000억 원이었던 자동차세는 2021년 8조4000억 원까지 늘었지만,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7조3000억 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7조5000억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여전히 8조원을 밑돌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세가 줄어든 데는 휘발유와 경유에 부과되는 주행분 자동차세 영향이 크다. 주행분 자동차세는 기본세율이 36%지만, 2022년부터 고유가 대책에 따라 26%의 탄력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세는 자동차를 소유한 데 따라 부과되는 세금과 주행 시 소비되는 휘발유와 경유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으로 구분된다.

자동차 소유에 따른 세금도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소유분 자동차세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17년 4.8%에서 2023년 2.4%로 줄었다. 등록 자동차 수 역시 같은 기간 3.3%에서 1.7%로 감소했다. 특히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가 늘어남에 따라 세수는 점점 줄어들 전망이다. 전기차는 휘발유와 경유에 부과하는 세금을 전혀 내지 않고, 하이브리드 차량도 내연차에 비해 연료 사용이 줄기 때문이다.

친환경차는 수요 증가로 지난해 기준, 전체 승용차 등록 대수의 약 10%를 차지했다. 2019년 이후 연평균 35.5%의 높은 증가세를 고려하면 세수 감소 폭은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앞서 정부는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통해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전기·수소차 비중을 전체 자동차의 85%로 끌어올리겠다며 이에 따른 자동차 세수는 현재의 69%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현행 배기량 기준인 과세 체계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비영업 승용차를 기준으로 자동차세는 배기량 1000cc 이하는 1cc당 80원, 1600cc 이하는 1cc당 140원, 1600cc를 초과하면 1cc당 200원을 부과된다.

그러나 자동차 배기량은 줄이되, 출력은 그대로 유지하는 자동차 엔진 다운사이징 기술의 발달로 고가의 외산차가 일반 국산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낮은 사례가 늘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취득가액이 2788만 원인 1999cc 국산차를 구입해도 자동차세가 39만9800원으로, 취득가액 6330만원인 1995cc 외국산 자동차(39만9000원)와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현행 배기량 기준 과세 방식에서 벗어나 차량 가격, 중량, 이산화탄소 배출량, 전기차 출력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는 새로운 과세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 주요국은 시대적 변화에 맞게 자동차 관련 과세 기준을 다양화하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자동차 가격과 주행거리, 중량 등 다양한 기준으로 과세한다. 캘리포니아주, 미네소타주 등은 ‘차량 가격’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등록세를 과세한다. 오리건주 등에서는 도로를 이용하는 자동차가 실제 운행한 거리에 비례해 과세를 하고 있다.

터키는 차량 가격에 기준해 과세를 하는 대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에 대해서는 내연차에 비해 세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핀란드는 자동차 중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오스트리아는 엔진 출력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각각 과세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영국, 덴마크 등에서 도로 사용과 세원 확대를 위해 전기차에도 세금을 점차 부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허원제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 ‘해외 승용자동차세 과세체계 분석 및 시사점’을 통해 “친환경차 보급 목표 달성과 자동차에 대한 재산과세적 성격을 동시에 고려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과세기준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국내 자동차세 개편 관련 작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행정안전부는 2023년 한국지방세연구원과 함께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지만, 2년이 지난 현재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선포와 정권 교체로 추진단이 동력을 잃으면서 자동차세 개편은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보인다.

과세 기준 개편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라는 걸림돌도 있다. 한·미 FTA에는 “대한민국은 차종 간 세율 격차를 확대하기 위해 차량 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조세를 도입하거나 기존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최근 상호 관세 부과로 FTA의 효력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테슬라 등 미국산 고가 전기차에 불리한 세제 개편이 이뤄질 경우 통상 마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신미정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세제분석실 분석관은 “자동차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과세 기준을 마련하는 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며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도로 사용에 대한 비용 부담과 향후 세수 감소에 대해서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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