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의 여운이 가시기 전 ‘지옥’이 펼쳐졌다.
지난 3일 밤 서울은 타임슬립을 해 45년 전으로 돌아갔다. 윤석렬 대통령이 오후 10시 25분 비상계엄령을 발표하고, 어두운 밤 무장한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하나 둘 씩 모여드는 모습은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를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을 연상시켰다.
‘서울의 봄’은 지난해 개봉해 100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고 전두환(전두광)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은 지난달 29일 열린 ‘제 45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서울의 봄’을 보고 분노하던 관객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실제로 이와 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무장계엄군은 국회 출입문을 폐쇄하고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을 가결하기위해 국회로 모여든 국회의원의 출입을 막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여러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고, 시민들은 계엄군들과 몸싸움을 불사했다.
“부끄럽지도 않으냐”며 계엄군 총부리를 잡은 안귀령 민주당 대변인에게 계엄군이 두 차례 총구를 겨눴고, 불상사를 우려한 시민들은 이를 막아섰다. 결국 무장계엄군은 유리창을 깨고 시민들과 몸싸움을 하며 국회 내부로 진입했고,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의자와 집기 등으로 바리케이트를 쌓고 소화기를 뿌리며 계엄군을 막아섰다. 계엄군과 시민이 대치하고, 유튜버들이 현장을 생중계하는 아수라장은 흡사 넷플릭스 ‘지옥’을 방불케했다.
‘지옥’은 계속되는 사자의 지옥행 고지로 혼란스러워진 대한민국에서, 종교집단 새진리회와 민간집단인 소도, 거대 테러 집단 화살촉 세력에 정치인까지 합세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며, 같은 국민들끼리 편이 갈려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지옥세상이 연출된다.
계엄령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선 2005년 방송된 MBC 41부작 드라마 ‘제5공화국’도 소환됐다. 첫 회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10·26 사건이 등장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는 장면도 나온다. 지난해 영화 ‘서울의 봄’이 대성공을 거두자 MBC측은 케이블 채널을 통해 드라마를 재방송 편성하기도 했다.
실제로 드라마 촬영 당시 광화문 한복판에 탱크와 장갑자, 군용 트럭 등이 출몰해 시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12.12 사태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9사단장 노태우등의 군부 장악 기도에 맞서 장태완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이 전차부대를 출동시킨 장면 촬영을 위해 청와대로 진격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이덕화가 전두환 전 대통령, 서인석이 노태우 전 대통령을 연기했다. 실제인물과 외모 싱크로율은 물론 말투와 버릇까지 똑같이 재현해 역사 교과서라 불리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이후 전두환이 권력을 잡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역사적 사건들도 담겼다.
다행히 영화 속 이야기, 아니 45년 전처럼 비상계엄령이 1년 넘게 이어지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비상계엄령은 국회의원 제적 190명 전원 찬성으로 4일 새벽 1시경 해제 결의안이 가결됐고,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7분쯤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군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시민들은 놀란 가슴으로 하얀 밤을 지새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