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문제 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로 인해
우리가
자유롭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치를 담습니다.
#궁궁통1
새 교황 레오 14세는
미국인 출신의
첫 교황입니다.
CNN에서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그는 미국인 추기경 중에서
가장 덜 미국인답다."
(He was the 'least American' of the American cardinals.)


이유가 있습니다.
레오 14세의
고향은
시카고이지만,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삶의 대부분을
남미의 페루에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페루에서
그가 얻은 별칭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남미의 프란치스코.’
왜 하필
남미의
프란치스코였을까요.
그와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엇이 닮은 걸까요.
#궁궁통2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아르헨티나의 빈민촌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빈민촌은
치안이 미치지 않는
곳입니다.
마약 카르텔과
총기 사건이 난무하는
무척 위험한 곳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제 시절,
친구와 함께
빈민촌 입구까지
가곤 했습니다.
입구 앞에서
친구는 돌아가고
젊은 프란치스코 교황만
빈민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정도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훗날
교황에 선출됐을 때
빈민촌 사람들은
“빈민들의 교황이 탄생했다”며
정말 기뻐했습니다.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레오 14세 교황)도
그랬습니다.
프레보스트는
1985년부터
페루 치클라요 외곽의
판잔이라는 빈민촌에서
초라한 집에 살며
주민들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표면적인
봉사활동이 아니라
아예
그들의 삶 속으로
쑥 들어갔습니다.
빈민촌 사람들은
프레보스트를
“파드레 로베르토(로버트 신부)”라고
불렀습니다.

1990년대 초에
큰 홍수가
이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프레보스트는
수도회 신학생들과 함께
진흙과 나무로
집을 지어서
임시 대피소를
만들었습니다.
마을 아이들에게는
스페인어로
동화를 읽어주며
위로했습니다.
홍수로
자식을 잃은
여인도 있었습니다.
프레보스트는
그 여인의 집을
매일 방문해
기도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은
하느님의 품에 있다”며
위로했습니다.
결국
그 여인은
아픔을 이겨내고
마을 공동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나는 살아갈 힘을
잃었을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습니다.
“파드레 로베르토는
우리와 똑같이
진흙 범벅이 돼서
일했다.
우리가 고통받을 때
그는 함께 울었다.”
#궁궁통3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페루를 강타했습니다.
당시
프레보스트는
치클라요 교구의
교구장이었습니다.
페루는
의료 시스템이
거의 붕괴한
상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