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담배회사가 한국에서 합성니코틴 액상 전자담배를 세계 최초로 출시한 이유는?

2025-01-13

세금도 없고 규제도 안 받아

액상형 전자담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담배’ 정의에 불포함

계엄 사태 이후 상임위 열리지 않아 규제 법안 국회 계류중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규제하는 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현행 법상 합성니코틴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아 세금도 안 내고, 관련 규제도 피해가고 있다. 여야 모두 국민 건강권과 조세 형평성을 위해 법 개정에 공감하고, 담당 부처도 유해성을 인정했지만 국회가 열리지 않아 법안 통과가 미뤄지고 있다.

12일 국민의힘 소속 송언석 기재위원장 등이 대표발의한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보면, 담배의 원료를 ‘연초의 잎’에서 ‘연초, 니코틴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화학물질’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재위는 지난달 27일 관련 공청회까지 마쳤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하지 않는 국가다. 액상형 전자담배 사업자들은 현행 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있다. 현행 법에는 연초에서 나오는 천연 니코틴을 주원료로 해야만 ‘담배’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합성 니코틴은 현행법상 담배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 관련 규제를 피해갔다. 담배 ‘던힐’을 판매하는 글로벌 담배회사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가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한 이유다.

현행법상 담배가 아니라는 이유로 합성니코틴이 들어간 액상형 전자담배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우선, 청소년에게 팔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9~2023년 청소년 흡연자 10명 중 3명(32%)이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하고 이 중 60% 이상이 현재 일반담배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쇼핑몰, 무인자판기 등에서 청소년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합성니코틴이 들어간 액상형 전자담배에는 담배소비세 등 세금도 붙지 않는다. 과세 형평성에 어긋나는 셈이다.

송언석 의원이 기재부·관세청·식약처·전자담배협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입법 공백으로 합성니코틴 액상 전자담배에 부과하지 못한 제세부담금이 지난 4년간 3조3895억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합성니코틴에 부과하지 못한 제세부담금은 2021년 5358억원, 2022년 9891억원, 2023년 1조1249억원, 지난해 8월 기준 7397억원으로 갈수록 늘어났다.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난 상황에서 합성니코틴에 과세하면 정부는 연간 1조원 이상의 추가 세수를 거둘 수 있다.

합성니코틴이 들어간 액상형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처럼 경고 문구와 사진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정부 허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는 일반 담배와 달리, 온라인에서도 판매할 수 있다. 올해 11월부터 시행되는 담배유해성관리법에 따른 유해성 심사도 피해갈 수 있다.

문제는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합성니코틴도 건강에 유해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재위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합성니코틴과 연초 니코틴 유해성 비교평가 보고서’에는 합성니코틴 원액에 발암성·생식독성을 포함한 유해물질이 다수 포함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합성니코틴 원액에서는 41개 항목에서 유해물질이 리터당 2만3902㎎ 검출됐다. 천연니코틴 원액 유해물질 검출량(리터당 1만2509㎎)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는 “합성니코틴은 연초 등 다른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업계의 주장과 배치된다.

전자담배 규제는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규제기본협약을 통해 각국에 전자담배를 비롯한 담배 규제를 권장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합성 니코틴을 비롯한 모든 니코틴 함유 담배 제품에 사전승인제도를 도입했다. 담배제조사가 사전에 안전성 기준을 통과해야지만 담배로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캐나다와 유럽연합 등에선 멘톨(박하향) 등 향이 첨가된 담배 판매를 원천 금지한다. 유럽국가 대다수와 미국, 캐나다 등 약 46개국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와 액상형 전자담배에 과세하고 있다.

한국 담뱃값 OECD 최하위 수준···조세 저항은 넘어야 할 산

영세 담배사업자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는 넘어야 할 산이다. 맹희석 한국전자액상안전협회 전무이사는 지난달 27일 열린 기재위 공청회에서 “합성니코틴은 금연보조제로 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지만, 개정안은 흡연자들이 덜 해로운 니코틴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박탈한다”며 “서민과 영세기업의 피해와 반발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담뱃세 인상에는 ‘역진성’ 논란이 따라붙기도 한다. 저소득층일수록 흡연율이 높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담뱃세를 2000원 인상하면서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앞으로 10년간 담뱃값을 한 갑당 8000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지만, 담배업계와 흡연자의 반발이 커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

한국의 담뱃값(4500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평균인 7.36달러(1만80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담뱃세를 올리면 담배 소비가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대한금연학회지가 2022년 발간한 ‘담뱃값 인상 후 흡연행태 변화 및 관련요인’ 보고서를 보면, 한국에선 2015년 담뱃값 인상으로 1년 내 기존 흡연자의 20%가 금연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에선 담배가격이 22% 오르자 흡연율이 3.7%포인트 줄었다. WHO는 담뱃값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담배 소비 감소 수단이라고 권고한다.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무시 못할 요소다. 질병관리청이 낸 ‘흡연으로 인한 국내 사망자수와 사회경제적 비용(2019년)’ 자료를 보면, 흡연으로 생기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12조1913억원에 달한다. 흡연자 조기 사망으로 생기는 생산성 손실비용이 6조4606억원이다. 흡연자 의료비·간병비 등으로 건강보험 재정 등에서 4조6192억원이 든다.

대한금연학회는 “향후 물가와 신종담배 유입을 고려해 금연을 유도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가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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