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에 대응할 정부의 의무는 호주에서 끝내 인정되지 않았다. 토레스해협 원주민들이 제기한 기후 소송에 대해 법원은 “현행법이 규율하는 영역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가디언 등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호주 연방법원은 “삶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의 피해를 예방할 의무가 호주 정부에 있다”라는 토레스해협 원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판결은 2021년 토레스해협 원주민들이 제기한 집단 소송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주거지와 무덤이 바닷물에 잠기는 등 실질적인 피해를 겪고 있으며 호주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마이클 위그니 연방법원 판사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으로 개인 또는 지역 사회에게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현행법은 이에 대한 실질적인 손해배상이나 구제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기각의 이유를 밝혔다. 과실 책임을 중심으로 한 호주의 현행 법체계에서는 정부의 기후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상실이나 피해가 법적 규율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토레스해협 원주민들은 정부가 기후변화를 예방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에게 영적 존재인 섬, 바다, 무덤 등을 잃게 됐다고 주장했다.
위그니 판사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정부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면서도 “이로 인해 지구 온도가 상승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해당 기간 집권한 보수당 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6% 줄이겠다고 내세웠는데, 이는 이후 2022년 집권한 진보 성향의 노동당 정부가 제시한 40%에 비해 낮은 목표치다.
다만 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기후 변화로 마을의 홍수·침수 피해가 잦아지고 산호초의 표백 현상 등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위그니 판사는 “정부가 기후 변화에 대응해 더 큰 조처를 하지 못하면 섬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지고 원주민들은 ‘기후 난민’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원고 측 대표인 파바이 파바이와 폴 카바이는 판결 직후 “우리에게 유리한 결정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충격적이다”라며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는 원주민과 비원주민 모두에게 해당할 고통”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부 변호사들은 집으로 돌아가 비싼 침대에서 푹 잘 수 있겠지만 우리는 각자의 섬으로 돌아가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사우스웨일즈대학 기후 위험 및 대응 연구소의 리오나 무들리 연구원은 이번 판결이 “확실한 좌절”이라면서 “법률이 기후 변화의 요구에 맞게 변화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은 2013년 환경단체 우르헨다 재단이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념비적 기후 소송을 본보기로 하고 있다. 우르헨다 소송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물은 세계 첫 소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