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콧구멍까지 다 잡히는 샷도 있는데, 그게 그냥 괜찮더라고요.”
28일 오후 2시 서울 삼청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은 ‘하얀 차를 탄 여자’ 정려원을 만나 그가 이번 작품을 통해 얻게 된 점, 7년 만의 영화 복귀 소감, 영화 제작 현장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얀 차를 탄 여자’는 피투성이 언니를 싣고 병원에 온 도경(정려원)이 형사 현주(이정은)에게 뒤엉킨 진술을 쏟아내며, 모두가 다르게 기억하는 범인과 그날의 실체에 접근하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폭설이 내린 새벽 병원에서 시작된 진술은 서로 모순되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는 흐려진다.
“촬영은 딱 14회차였어요. 길게 붙잡고 수정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었죠. 회의 때까지 고민할 건 다 하고, 촬영에선 그냥 전력으로 밀어붙였어요. 날씨도 많이 추웠는데, 그 추위 덕분에 화면 밖으로까지 스산함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이 짧은 일정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빡빡했다. 도경은 한 인물인데 하나로 설명되지 않기 떄문이다. 극이 진행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서사가 튀어나오고, 이에 따라 정려원은 다른 인물을 꺼내야 했다.
“A, B, C 버전의 도경을 같은 공간에서 바꿔가며 찍어야 했어요. 첫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의심하는 대로 ‘조현병 환자일 수도 있다’는 전제 그대로 갔고요. 두 번째는 이 인물이 상상 속에서 더 과장되는 상태를 잡았어요. 마지막은 오랫동안 가스라이팅도 당하고 약도 먹고 누명도 썼지만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남은 사람으로 접근했어요.”
그 과정에서 정려원이 부딪힌 가장 큰 벽은 자신의 연기 자체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유지해온 단정함, 배우로서 화면에 남기고 싶지 않았던 각도, 클로즈업을 향한 방어 같은 것들이 현장에서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이 작품이 저한테 준 건 ‘내려놓아도 된다’는 마음이었어요. 현장에서 찍으면서 (이)정은 선배랑 콧구멍 샷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아직 이런 걸 못 내려놨었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하다 보니까 그게 전혀 안 중요해지더라고요. 이게 이렇게 나오든 저렇게 나오든 하나도 안 중요한 거예요. 그 외에 붙잡고 있던 것들이 오히려 방해였구나 싶었죠.”
그런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건 감독과의 신뢰였다. ‘검사외전’에서 조연출로 만났던 고혜진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첫 장편 영화 연출에 나섰다.
“처음 만났을 땐 거의 말도 안 했던 친구예요. 근데 현장에선 넉살 좋게 배우들을 연출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천재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나 선배라서 저를 어려워할 수도 있는데 첫 촬영부터 문 두드리며 울부짖는 장면을 찍었어요. 그래서 ‘진심이냐, 괜찮겠냐’고 물었죠.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기강 제대로 잡혔죠.”
그 신뢰는 제작 방식 전반으로 확장됐다. 짧은 촬영 일정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군더더기 없이 돌아갔다. 모두가 빠르게 움직이지만, 누구 하나 겉돌지 않고 톱니바퀴처럼 유려하게 흘러갔다.
“이 현장은 서로 예뻐해주는 분위기였어요. 감독님이 모든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거든요. ‘어렵게 모셨다’는 식으로 얘기하니까 다들 진짜로 ‘이 사람을 위해서 하자’라는 마음으로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장에서 연출이 비는 텀이 있어도 바로바로 찍을 준비가 되도록 각자 자율적으로 움직였고, 덕분에 14일 안에 다 찍었죠. 솔직히 다른 작품이었으면 절대 이 시간 안에 못 찍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함께 호흡한 이정은에 대해서은 ‘찐어른’이라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일상에서부터 후배 대하는 방식,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는 태도까지 전부가 본보기였다고 말했다.
“이정은 선배는 삶의 태도가 너무 단단하고, 후배들이랑 격 없이 잘 어울리세요. 같이 밥을 먹는 걸 보면 알겠어요. 언니를 어려워하지 않고 눈을 맞추면서 편하게 얘기해요. 그런 건 아무나 못 받는 신뢰거든요. 저도 나이가 들면 저런 방식으로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편 ‘하얀 차를 탄 여자’는 오는 29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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