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전시 공간이 된 한옥…방문객과 주민간 균형은 과제

2025-09-08

프리즈 서울과 ‘케데헌’이 바꿔 놓은 한옥 풍경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100년 된 한옥 휘겸재. 전통 한옥 구조에 유리문·샹들리에 등 일제강점기의 근대적 요소가 절충된 곳으로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15일까지 이곳에서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다. 대청에 거대한 추상화가 걸려 있는가 하면, 마당에는 미디어아트와 조각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곳을 찾은 해외 미술 전문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오스트리아 빈 응용미술관(MAK)의 릴리 홀라인 관장은 “전통적 형태의 공간에서 젊은 한국 작가 10인의 작업을 마주하는 경험은, 한국을 처음 찾은 이에게 색다른 시선과 새로운 탐구의 기회를 열어준다”고 평했다.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리뷰의 마크 라폴트 편집장도 “한옥 안팎과 정원까지 스며든 전시 구성이 특히 인상적”이라 했다.

낙선재·휘겸재 현대미술 전시

외국 전문가·관광객들 호평

‘여백의 미’ 현대미술과 잘 맞아

케데헌 효과, 내국인 관심 증가

서울 공공한옥은 영리 사업 불가

북촌 주민들 관광객 소음에 불편

이 전시 ‘다이얼로그’는 문체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화랑의 전속작가 제도를 지원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전시인데, 지난해부터 휘겸재에서 열어오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이곳을 찾아 참여 작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한편 지난 7일까지 창덕궁 낙선재에서도 한옥 공간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선 24대 임금 헌종의 서재였던 낙선재 대청에는 화가 제여란의 추상화와 왕실에서만 쓰던 붉은 옻칠 장롱의 현대적 버전(국가무형유산 칠장 정수화 작품)이 함께 전시됐다.

바로 옆 석복헌은 헌종이 총애하는 후궁인 경빈 김씨를 머무르게 한 곳인데, 사진작가 김용호의 연잎 사진과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장 최성우의 연꽃 작품이 마주 보고 있었다. 이들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쁜 한복 입은 외국 관광객이 있는가 하면 작가 이름을 메모하는 외국 관람객도 있었다. 국가유산청이 주최하고 전통 장인과 현대미술가 50인이 참여한 제3회 ‘K-헤리티지 아트전’의 풍경이었다.

한옥 전시, 인기 트렌드로 자리잡아

이들 한옥 전시는 지난 6일과 7일에 각각 막을 내린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아트페어의 기간에 맞춰 열린 것이다. 런던에서 탄생해 2022년부터 한국의 키아프와 파트너십을 맺고 서울 에디션을 열어온 프리즈는 지난 4년간 한국 미술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외국 관계자들의 방한이 급증하고 주요 해외 갤러리들이 지점을 열어 서울이 국제 미술계의 신흥 거점이 된 것, 이에 따라 국내 작가들의 무대가 넓어진 것, 국내 젊은 신진 컬렉터 층이 급성장한 것 등이 주요 변화다. 여기에 더해 예상치 못했던 효과들이 있는데 ‘예술 전시 공간으로서 한옥의 재발견’도 그중 하나다.

물론 그전에도 선구적인 사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제12대 국회의장을 지낸 운경 이재형이 살던 서울 사직동 운경고택은 2019년부터 현대공예·미술 전시를 열어오고 있다. 또한 삼청동 미술거리의 주요 갤러리인 학고재는 1995년 한옥 개조 건물을 사들여 지금까지 전시공간으로 써오고 있다.

그러나 “한옥 전시가 확실한 인기 트렌드가 된 것은 프리즈 서울이 계기”라고 낙선재 ‘K-헤리티지 아트전’을 기획해온 한국헤리티지문화재단의 신동훈 대표는 말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동시에 열린 첫 해인 2022년에 키아프 팀장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해외 VIP들이 한국적인 것을 보고 싶다고 요청해 오는데 갈 데가 마땅치 않다고. 그때 마침 국가유산청 기획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러면 궁에서 해외 VIP들이 볼만한 전시를 해보자고 청과 이야기했다. 심의위원들을 어렵게 설득했고 2023년 첫 전시가 반응이 좋아 장소를 확장하며 계속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이런 종류의 다른 전시들도 부쩍 늘었다.”

신 대표는 “작품과의 조화를 위해 단청이 화려한 궁궐 전각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여백의 미가 있는 여염집 형태의 낙선재를 골랐다”며 “본래 헌종의 서재로서 서화를 보관·감상한 역사를 이어받는 측면도 있고, 또 작은 방 한 칸마다 작품을 하나씩 넣어 전시하니 독특한 공간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옥, 관람객과 작품간 거리감 좁혀”

삼청동 대표 갤러리 중 하나인 국제갤러리도 본관 옆의 한옥 고택을 사들여 전시 공간으로 개조하고 2023년 키아프×프리즈 서울 기간부터 전시를 열어오고 있다. 지금은 이곳에서 20세기 미국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가 둥근 커피 필터 위에 그린 드로잉들을 전시하고 있다.

국제갤러리 윤혜정 이사는 “갤러리의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백색 직사각형 공간)와 달리 아늑한 한옥 공간은 전시 관람객들에게 작품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 친밀감을 주는 동시에 신선한 느낌도 준다”며 “그래서 루이즈 부르주아 재단에서도 작가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작품인 커피 필터 드로잉을 한옥 공간에서 전시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인들이 한옥 전시에 열광하면서 한옥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도 덩달아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문화 현상’‘시대정신’이라는 평까지 듣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평했다. 이 애니에는 북촌 한옥마을이 중요한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한다.

신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낙선재 전시 첫 2년은 내국인보다 외국인 반응이 훨씬 열광적이었요. 전시된 작품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이 모두 외국인이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내국인 문의도 많아졌습니다. ‘케데헌’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니까 한국인들이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 거죠.”

북촌문화센터 관람객 크게 증가

‘케데헌 효과’는 서울시에서 2000년대 초부터 구입해서 관리하는 고택인 공공한옥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시 공공한옥은 북촌 26곳, 서촌 6곳, 은평구 1곳 등 총 33곳이다. 이중 북촌에서 대표적인 곳은 일제강점기 재무관 민형기가 살았던 등록문화재인 북촌문화센터, 20세기 한국화가 배렴이 살았던 배렴가옥 등이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북촌문화센터를 찾은 관람객만도 지난해 27만 명에 이르렀고, 올해에는 7월까지의 관람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20% 증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케데헌 효과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북촌 주민들의 관광객 소음에 대한 민원도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나날이 증가하는 내·외국인의 한옥 사랑의 그림자다. 바로 이점 때문에 서울시는 공공한옥에서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하는 것에 있어서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가을 ‘서울한옥위크 2024’의 일환으로 북촌과 서촌의 공공한옥 및 개인 소유 ‘우수한옥’ 10곳에서 현대미술 전시 ‘공간의 공명’을 열어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달 26일 개막하는 ‘서울한옥위크 2025’는 한옥 마당의 독특한 조경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반면에 서울 공공한옥은 키아프×프리즈 기간에 연계 미술 행사를 개최한 적이 없다. 또한 최근 몇 년간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한옥 팝업 스토어 행사들이 인기를 끌면서 서울시 공공한옥에도 관련 요청이 들어오고 있지만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서울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전시가 열리는) 휘겸재의 경우는 사유지이며 대로변에 위치한 대형 한옥이므로 여러 행사가 가능하다. 반면에 서울시 공공한옥들은 주거지와 밀착해 있다 보니 소음 문제에 민감하다. 또한 주민들은 공공한옥의 영리사업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공공한옥 대관은 다 무료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한옥포털에서 누구나 대관을 신청·예약할 수 있다. 다만, 해충에 약한 건축물이고 방음이 잘 안 되므로 생일잔치처럼 음식물을 반입하고 소음을 유발하는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에 회의나 강연 등의 용도로 대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간단한 음료나 다과 반입은 허용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영리사업이라도 방문객 위주로 하다 보면 주민들이 불편해한다”며 “그래서 한옥마을을 관리하고 상담을 진행하는 지원센터 같은 시설을 늘리는 쪽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더 많은 공공한옥을 주민을 위한 시설로 써 달라는 요청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남산 한옥마을이나 민속촌과 달리 이곳은 주민들이 실제로 사는 곳이고 또 잘 보존됐기 때문에 국내외 방문객들이 그런 것들을 보러 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만약에 주민들이 이사 가고 떠나가면 이곳은 가치가 없어지는 거죠. 따라서 방문객들과 주민들 사이에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우리의 최대 과제입니다. ‘케데헌 효과’로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이 과제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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