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중년의 여환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주기적으로 구강관리를 받던 분이었고, 구강건강 상태나 자가관리가 양호하여 1년 간격 내원을 권유하여도 굳이 6개월 방문을 희망하는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원이 끊겼습니다. 오랜만의 재회가 마냥 달갑지만 않았던 것은, 이동식 산소공급기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폐 섬유증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고작 몇 문장을 구사하는 데에도 숨이 가쁘게 차오르는 아내를 보며, 보호자인 남편은 이 상황에 스케일링이 중요하냐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구강관리를 진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환자는 그조차 무리가 되었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목소리로 이제 진료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조건 돌려보내야지, 확신으로 돌아서려는 순간입니다.
‘선생님, 제가, 이전에, 받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개운하게, 꼭, 받고, 싶어요.’
숨 가쁜 목소리에 힘이라고는 없지만, 전달되는 의미만큼은 명료합니다. 오늘 진료 VIP는 이 분이구나, 확신이 다시 돌아섭니다. 휠체어 상태 그대로 전문가 잇솔질을 진행합니다. 두 줄 모 칫솔을 이용한 소위 ‘와타나베’ 방법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성껏 수행합니다.
술식 도중 약간의 해프닝이 있기는 했습니다. 산소 공급기에서 갑자기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호자를 불러 장비를 점검해보니 산소량은 충분한데 산소가 전달되는 호스 중간이 접혀 있었습니다. 툴툴대면서도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보호자 덕에 산소공급기 주의사항을 잘 배웠습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수기구를 이용해 치석제거를 하기까지 환자의 호흡은 안정을 유지합니다.
‘예전엔, 당연했던, 것, 이제는, 못하는 줄, 알았는데, 참, 개운하네요.’
별 것 아닌 구강관리가 이 환자에게는 늘 해오던 ‘루틴(Routine)’, 다시 말해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의 일부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예방치과를 전공했지만 그리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리 대단하지 않을 전문가 구강위생관리라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대단히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러운 마음입니다.
어쩌면 제가 루틴하게 제공하는 이 전문가 구강위생관리 술식도 이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주로 만나는 장애인은 대개 선천성이고, 지적장애 혹은 자폐장애의 비율이 높다 보니 루틴한 구강관리 이후 보호자들의 루틴한 인사를 평범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후천성으로 장애를 갖게 된 환자들이 불편해할까 조심스러워 소통에 소극적이었는데, 오히려 이로부터 한 가지 배움을 얻습니다.
장애(질병)가 생기거나 혹은 가족이 장애(질병)를 얻게 된 경우 일상의 특별한 경험이 줄어드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상의 루틴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치과 의료인은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소중한 루틴을 지켜줄 수 있는 전문 직업인이고, 이에 속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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