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철 칼럼] 대한민국 사계절 균형이 무너진다

2025-06-01

기후변화로 인한 사계절의 균형 붕괴가 대한민국에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여름은 평균 20일 늘어난 반면, 겨울은 22일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봄, 여∼∼름, 가을, 겨울’화 하는 것이다. 이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평균기온 상승이 계절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이며, 기후위기가 더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방증한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특히 농업현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온 상승과 강수 패턴의 변화, 계절의 시작과 종료 시점이 달라지면서 전통적인 24절기를 기준으로 운영되던 농사력(農事曆)이 점점 맞지 않고 있다. 절기에 따라 파종과 수확, 병해충 관리를 계획해온 농민들에게는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작물의 생육 시기와 자연환경 사이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농업 생산성과 품질 저하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는 절기 중심의 농업에서 벗어나 기후 예측과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영농 전략 수립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4년 전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1.54℃ 상승했다. 이는 국제사회가 파리기후협정을 통해 설정한 지구 온도 상승 1.5℃ 이내 목표를 사실상 초과한 것으로 인류가 기후재난의 문턱을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경고 신호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 국립기상과학원 김정훈 박사는 “계절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은 기후위기가 일상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농업, 도시계획, 에너지 정책 등 각 부문에서의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상청에서도 올여름 집중호우와 폭염·강풍 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통계상으로도 여름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지역의 집중호우는 갈수록 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여름철 집중호우 발생 빈도가 지난 50년동안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당 100㎜ 이상 비가 쏟아지는 극한호우도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농촌진흥청에서는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 시스템은 필지 단위 맞춤형 위험기상 정보를 생산해 농가에 제공함으로써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현업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전국 110개 시·군에서 40개 주요 작목에 대해 기온과 강수 등 11개 날씨 정보와 가뭄과 홍수 등 15종의 위험기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농가에 전달하고 있다. 농진청은 이 서비스를 올해 155개 시·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상청도 5월15일부터 10월15일까지를 ‘여름철 방재기상업무 기간’으로 지정하는 등 변화무쌍한 여름철 날씨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이 기간은 농업 기상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시기다. 기후변화가 사계절의 경계를 허물고 여름철 복합재해가 문앞을 서성이는 만큼 기상청과 농진청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더욱 정확하고 실용적인 농가 맞춤형 기상정보서비스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남재철 전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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