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인사이트] 이차전지 화재 안전,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2025-06-03

이차전지는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휴대용 전자기기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으며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을 이끄는 엔진이 되고 있다. 동시에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국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기반 기술로도 주목받는다.

그러나 기술 발전 이면에는 고에너지 밀도에 따른 화재 위험이라는 구조적 리스크가 상존한다. 최근 전기차 및 ESS 화재 사례가 빈발하면서 이차전지 안전성에 대한 국민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법·제도 체계가 이러한 기술 환경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배터리 안전 관련 제도 개선에 참여해왔고, 현재는 동서대에서 '이차전지 방화공학'을 강의하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한국ESS산업진흥회 고문으로 국가 정책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한 사실은 이차전지 화재는 단순한 제품 결함을 넘어서 소재 자체의 화학적 위험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현재 이차전지를 구성하는 전해질, 분리막, 양극재 등은 가연성과 산소 방출 특성을 지닌 고위험 물질이다. 그럼에도 '위험물안전관리법'에서는 이들 소재를 위험물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제조·보관·운반·사용 과정에서 화재 예방 조치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사고 발생 시에도 소방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첫째, 화재 위험성이 높은 이차전지 구성 소재를 위험물안전관리법 상 신규 위험물로 지정하고, 연소열·인화점·산소방출량 등 물리화학적 특성에 기반한 지정수량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현행 법령은 분리막, 전해질, 양극재 등의 인화성과 산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물질을 제1류(산화성 고체), 제4류(인화성 액체), 제5류(자연발화성 물질)로 정밀 재분류하고, 물질별 지정수량 초과 시 방화설비, 저장시설, 관리자 요건 등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둘째, 전기차 및 ESS 등 주요 사용시설에 대해 초기 화재 감지 및 차단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하고, 주기적 안전성 검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배터리 내부 온도 상승, 가스 누출, 전압 불안정 등 열폭주의 전조 신호를 실시간 감지할 수 있는 센서 및 인공지능(AI) 기반 시스템을 KS 또는 KC 기준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화재 조짐이 감지되면 자동 전원 차단, 불활성 가스 방출, 소방서 자동 통보로 이어지는 통합 대응 체계가 필수다. 또 전기차와 대형 ESS에 대해서는 2~3년 주기의 안전성 진단을 통해 열화 상태 및 내부 결함 여부를 점검하고, 결과를 통합 시스템으로 추적 관리해야 한다.

셋째, 산업계·학계·정부가 공동 참여하는 이차전지 화재 대응 연구와 국제 인증 기준 대응을 위한 지원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행안부, 산업부, 환경부, 국토부, 과기부, 소방청 등이 공동 주관하는 '이차전지 화재안전 종합연구센터'를 설립해 열폭주 시험, 유해가스 분석, 연소특성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야 한다. 국내 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ISO·IEC·UL·EEC·GTR 등 국제 인증을 위한 공공 시험·검증 플랫폼을 구축하고, 인증 비용과 장벽을 낮춰야 한다. 또 ESS, 전기차, 물류창고 등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의 분석 데이터를 공식적으로 수집·공개해 제도 개선과 국제 기준 대응에 활용해야 한다.

이차전지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에너지 대전환 시대를 이끌 핵심 인프라다. 하지만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기술은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뿐 아니라, 국민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 “기술은 진보해야 하고 안전은 그보다 반 발짝 앞서야 한다”는 원칙을 실현해야 할 때다. 정부와 국회가 이차전지 화재 대응을 국가적 전략과제로 인식하고, 보다 과감하고 체계적인 대응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박용성 동서대 이차전지 인재양성 전임 교수·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수송부문 전문위원 ahpy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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