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기간이라 조용해야 할 대학 캠퍼스가 서머스쿨에 온 전 세계 젊은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이들이 캠퍼스를 누비며 외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외국 대학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무엇이 이들을 한국에 오게 한 것일까. 대체로, 한국이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것이 요인이다. 지난 한 달 사이 넷플릭스 글로벌 시리즈 부문과 영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 시즌 3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모두 한국 콘텐츠이니 그럴 만도 하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우리와 상관이 없는 줄 알았던 올림픽 수영, 피겨·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박태환·김연아·이상화가 금메달을 땄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나 뮤지컬은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기도 한다. 그런데 뮤지컬은 현지에 가서 오리지널 팀 공연을 보려는 유인이 강하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런던이나 뉴욕에 출장 갈 때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찾거나, 뮤지컬을 보려고 일부러 가기도 하니 경제 유발 효과가 매우 크다.
스웨덴 혼성 팝그룹 ‘아바’의 노래로만 구성된 뮤지컬 <맘마미아!> 사례를 보면, 뮤지컬 성공을 발판으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졌고 이어 속편까지 흥행했다. 2022년에는 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한 가상 콘서트 ‘아바 보이지(ABBA Voyage)’가 열렸고, 전용 극장이 건립돼 올드팬을 런던으로 모으고 있다. 원곡이 워낙 좋기도 하지만, 긴 공백기에 뮤지컬이 다리를 놓았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은 1985년과 1986년 이후 지금까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영상으로 제작된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은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는데, 전 세계 팬의 갈증을 덜어주고 저변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이 산업을 또 한 번 도약시켰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대학로 등 작은 무대를 넘어, 이제 뮤지컬 전문 배우 또는 가수로 인기를 얻은 스타가 즐비할 정도로 국내 뮤지컬 산업도 상당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상설 공연은 아닐지라도 장기 공연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공연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영화처럼 법적으로 하나의 실체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저작권법은 영상물의 시나리오 작가, 배우, 감독 등이 갖는 개별 저작권을 제작자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하는 조항을 두어 영상물 제작 참여자들 간 분쟁을 예방하고 있다. 안정적 투자 환경을 법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뮤지컬은 흥행에 성공한 후 참여자들이 개별적으로 저작권을 행사하여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뮤지컬도 저작권법에 영상물과 같은 특례조항을 두면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산업의 안정적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최근 <오징어 게임> 사례에서 보듯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투자자인 넷플릭스는 천문학적 돈을 벌었어도 배우 등 개별 참여자에겐 그 수익이 충분히 돌아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025 경향포럼>에서, 인공지능(AI) 관련 논의는 기술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기도 해서 소수의 개발자나 기업이 주도해서는 안 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지나 네프 영국 케임브리지대 민더루 기술·민주주의 센터장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여기에서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재정을 배분하는 정부 역할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영화·드라마, 음악·뮤지컬, 관광 등 신성장 동력으로 확인된 문화 콘텐츠 산업은 저작권 문제에서 빅테크 및 AI 개발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AI를 훈련할 목적으로 저작물을 허락 없이 가져다 써도 면책하는 ‘텍스트 데이터 마이닝(TDM) 예외’ 조항을 저작권법에 두자는 의견이 AI 산업계에서 강력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간 연장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폐지하라는 비관세 장벽 중에는 빅테크를 규제하는 국내법이 들어 있는데, 국내 이해당사자 간 합의가 통상 협상 못지않게 어렵다는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에서 정부의 고민이 읽힌다.
토니상 수상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한국 뮤지컬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저작권법 개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온라인 플랫폼 규제 및 망 사용료 관련 법안 폐기 등 빅테크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미국 측 요구와 저작권을 장애물로 인식하는 국내 AI 산업계의 주장이 더해져, 정부가 관세 협상에서 이미 핵심 산업이 된 문화 산업을 단지 ‘지렛대’로 이용하지나 않을지 우려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