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원의 동티모르 워치1] 아세안헌장이 맞이한 첫 번째 가족, 동티모르

2025년 10월 26일, 제47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동티모르가 아세안의 11번째 정회원국으로 공식 승인됐다. 가입 신청 후 무려 14년만의 승인이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과 호주 북부 다윈 사이에 위치한, 강원도 크기의의 동티모르(수도 딜리Dili)는 인구 142만명에 1인당 GDP가 약 1,500달러에 불과한 동남아시아 최빈국이다.

동티모르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여있는 나라 중 하나다. 과연 어떤 나라이고, 어떻게 아세안에 가입할 수 있었을까? 왜 이렇게 가입에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아세안익스프레스는 2008년부터 14년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를 역임한 최창원 교수를 특별 칼럼니스트로 초빙한다. 그는 앞으로 동티모르의 역사와,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쉽게 술술 풀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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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2008년 아세안 헌장(ASEAN Charter)이 발효된 이후, 단 한 국가도 정식 가입 절차를 통해 회원이 된 적이 없었다. 기존 10개국은 헌장 이전부터 창립 멤버이거나 헌장이 없을 때 가입한 국가였다. 그런데 지난 10월 26일, 인구 142만 명의 작은 나라가 아세안 헌장 체제가 맞이한 최초의 신입 회원국이 되었다.

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입 순간을 서울에서 지켜봤다. 의장이 “동티모르의 정회원 가입을 선포합니다‘라고 읊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바로 딜리의 옛 제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교수님, 드디어 끝났어요(Remata ona).“ 그 짧은 테툼어 한마디에 17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 아세안 문 앞에서 보낸 17년 드디어 ‘막내’로 식탁에 앉아

동티모르가 아세안 문을 공식적으로 두드린 것은 2011년이다. 2002년 독립 직후부터 염원했으니, 사실상 건국과 동시에 시작된 숙원이었다. 그러나 문지기들의 태도는 거절도 환영도 아니었다. 실제 활동 능력을 중시했기 때문인데, 싱가포르는 “경제 수준이 미달”이라 했고, 일부 국가는 “행정 역량 부족”을 거론했다. 매년 정상회의마다 동티모르 외교관들은 복도에서 서성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2022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원칙적 승인'을 얻어 옵저버 자격을 받았을 때, 현지 언론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딜리에서 함께 일했던 외교부 출신 동료의 말을 잊지 못한다.

“옵저버는 식당에 들어온 게 아니에요.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뿐이죠.” 그로부터 다시 3년, 창문 밖의 손님은 마침내 식탁에 앉을 자격을 얻었다.

■ 가입 한 달, 동티모르는 무엇을 했나...“호주와 가스전 개발합의” 빅뉴스

정회원이 된다는 것은 권리이자 청구서다. 아세안 분담금만 연간 약 250만 달러(약 37억 원). 여기에 매년 1,000회 이상 열리는 실무회의, 장관회의, 정상회의에 인력을 파견해야 한다. 외교부 인원이 200명 남짓인 동티모르로서는 회의 하나에 사람을 보내는 것조차 버겁다. 각종 협약 이행 일정은 기존 회원국 속도에 맞춰져 있고, 시장개방 압력도 거세다. 싱가포르와 베트남 기업들이 밀려들 때, 동티모르 토종 기업들이 버틸 수 있을까?

막내는 손 놓고 있지 않았다. 동티모르는 가입과 동시에 동남아비핵지대(SEANWFZ)조약에 서명하며 역외 강대국 영향력을 견제하는 아세안 중심성 강화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1월 25일, 호주 우드사이드(Woodside)사와 그레이터 선라이즈(Greater Sunrise) 가스전 개발에 최종 합의했다. 파이프라인이 동티모르 본토로 연결되면, 석유기금 고갈을 우려하던 국가 재정에 새로운 숨통이 트인다. 기존 회원국들이 품었던 “재정 취약국”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첫 번째 카드가 나온 셈이다.

■ 왜 그래도 아세안인가...외국인직접투자 보증수표

동티모르가 17년을 매달린 이유는 분명하다. 고립은 쇠퇴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세안 정회원 지위는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끌어들이는 보증수표다. 7억 인구의 단일 시장 접근권을 얻는다. 지정학적으로는 호주와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할 때, 10개국이라는 집단의 무게를 등에 업을 수 있다. 홀로 서면 강대국 눈치를 봐야 하지만, 11번째 의자에 앉으면 발언권이 생긴다.

지난 9월 오르타 대통령은 2029년 아세안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되었다. 니콜라우 로바투 국제공항 활주로를 늘리고, 정상들을 맞을 호텔과 컨퍼런스 센터를 지어야 한다. 아세안 사무총장이 “연기도 옵션”이라고 언급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변방의 항구 도시가 아시아 외교 무대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만큼은 분명하다.

동티모르국립대학교에서 아세안 과목을 강의하던 2019년, 학생들에게 물었다. “10년 뒤 이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한 학생이 대답했다. “아세안 정상회의를 딜리에서 여는 게 꿈이에요.”

나는 좋은 생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그 학생의 꿈이 이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수혜자가 아닌 파트너로서, 동티모르가 열어갈 다음 장에 갈채를 보낸다.

글쓴이=최창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참고문헌]

ASEAN Secretariat. (2022). *Chairman's Statement of the 40th and 41st ASEAN Summits.*

ASEAN Secretariat. (2007). *The ASEAN Charter.* Jakarta.

ASEAN Secretariat. (1995). *Treaty on the Southeast Asia Nuclear Weapon-Free Zone (SEANWFZ).*

Government of Timor-Leste. (2025). *Greater Sunrise Agreement with Woodside Energy.* Press Release, November 25.

Timor-Lest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2023). *Roadmap for ASEAN Full Membership.*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2025,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총괄책임 집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