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조절로 쌀값 잡는다”…양곡·농안법 개정, 연 1조 넘는 재정부담 줄인다

2025-07-31

정부가 쌀 초과생산에 대응하는 농정 전략을 시장격리 중심에서 사전 수급관리 체계로 전환한다. 양곡관리법과 농안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면서 재정 지출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정책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조 개편을 진행하면서다. 기존 법안 대비 연 1조원 이상 재정이 절감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개정은 쌀 의무매입과 평년가격 기준 보전을 전제로 했던 과거 구조를 뒤집고 논 타작물 재배 확대와 생산비 기준의 가격안정제 등 '사전 대응' 방식으로 수급을 조절하는 체계로 설계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전략적 수급관리 체계가 법적 기반을 갖추게 됐다고 보고 있다.

양곡법 개정안은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수급 대책 수립과 시행을 위원회 주도로 전환한다. 대통령령 기준을 초과하는 초과생산이나 가격 하락 상황이 발생할 경우 위원회 심의를 거쳐 매입을 포함한 대응 조치를 시행한다. 과거처럼 수치 기준만 충족하면 자동 매입이 작동하는 경직된 구조는 폐지된다.

논 타작물 재배 지원은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구체화된다. 정부는 연차별 목표면적을 설정하고 단지 조성, 시설장비, 판로 연계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선택직불제 등과 연계해 타작물 유인을 강화하고, 생산조정 효과를 예산으로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변상문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쌀값이 급락할 때마다 사후 대응으로 매입을 반복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예산으로 선제적으로 면적을 조절할 수 있게 된 점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라며 “정부 책임 하에 의무매입을 강제하던 구조보다 재정 효율성과 유연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구조 전환으로 시장격리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재의요구 당시에는 의무시장격리를 지속할 경우 2030년까지 누적 소모 예산이 1조4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전략작물직불금을 2000억원 수준으로 증액하면 유사한 수급 조절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농안법 개정안도 재정 유연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평균가격이 기준가격을 밑돌 경우 차액을 지원하는 가격안정제가 새로 도입됐으며 기준가격은 경영비, 자가노동비 등 생산비 중심으로 산정된다. 품목 선정과 보전 비율은 차관급 심의위원회가 정하고 대통령령으로 운영 기준을 마련한다.

홍인기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기준가격을 매년 생산비와 수급 상황에 맞춰 설정하고 농가가 실제 손실을 보지 않는 수준까지만 보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과거 농경제학회가 '평년가격-시장가격 차액 보전' 구조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5대 채소 품목에만 연 1조1906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기준가격을 유동적으로 설정할 수 있어 실제 예산은 그보다 적게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8월부터 2026년 2월까지 품목별 재정 추계와 시뮬레이션을 포함한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하위법령 설계를 병행할 계획이다.

시행 시점은 공포 후 1년 뒤인 2026년 8월로 예정됐다. 양곡법과 농안법은 각각 쌀과 채소류를 중심으로 단계적 운영을 시작한다. 선제 수급조절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불가피한 가격 하락 시에는 기준가격 이하분에 대해 차액 보전을 적용하는 2단계 대응 체계가 도입된다.

이번 개정은 농산물 시장의 '사후 수습' 중심 정책에서 '사전 조정과 위기 대응'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시장격리와 가격보장 구조를 법률에서 행정 기준 중심으로 옮긴 이번 변화는 재정 지출의 통제권을 정부가 다시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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