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콜센터 전화하고, 마음편의점서 차 마시고…외로움 안녕

2025-12-19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며 지냈죠.”

서울 동대문구에서 배달기사로 일하는 한선우(51)씨는 지난 2년을 돌아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식업을 하던 한씨는 사업 실패 후 스스로를 방 안에 고립시켰다. 재기할 용기도, 체력도, 가족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배달하며 건네는 형식적인 인사 말고는 대화할 상대조차 없었다. 한씨는 “이러다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며 “지금은 일부러라도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가족 중심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홀로 맞이하는 죽음을 걱정하는 건 한씨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성인 세 명 중 한 명(32.3%)은 고독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돼 마음 나눌 곳이 없어진 시민들이 외로움과 싸우며 ‘나 홀로 죽음’을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현대인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시간 100명가량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9년 2949명이었던 고독사 사망자수는 2023년엔 3661명, 지난해엔 3926명으로 크게 늘었다. 하루 평균 11명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셈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울시도 적극 대응에 나섰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적 과제’라는 인식하에 외로움·고립 은둔 종합대책인 ‘외로움 없는 서울’을 본격 시행하는 등 사회적 고립과 단절·은둔 예방 대응에 공을 들이고 있다. 24시간 전담 콜센터인 ‘외로움안녕 120’을 운영하는 게 대표적이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전화 한 통화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긴급 상황에 처했을 땐 위기 대응 방안도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

수요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난 4월 서비스 시작 이후 전화와 채팅 상담이 2만9000건 넘게 진행됐다. 하루 평균 120건에 달하는 수치다. 콜센터 관계자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며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호응을 체감한 서울시는 오프라인 소통 공간인 ‘서울마음편의점’도 개설했다. 고립·은둔 시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 커피나 차를 마시며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담소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려는 취지였다. 이에 더해 재취업 프로그램과 요리 교실 등 다양한 참여 공간도 제공했다. 그 결과 관악·동대문·강북·도봉구 등 올해 먼저 도입한 4개 구의 마음편의점을 찾은 시민은 5만2000명에 달했다. 이런 성공 사례는 BBC와 가디언·르몽드 등 해외 유력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내년엔 ‘외로움 없는 서울’을 시즌2로 확대 발전시키기로 했다. 마음편의점도 25개 구로 확대하고 ‘서울잇다플레이스’ 등 새로운 공간도 조성할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로움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누구도 외롭지 않은 도시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