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고 켠 난방, 숙면엔 독이었다

2025-12-18

전문가 “겨울 숙면, 체온 리듬 지키는 환경 조성이 핵심”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8) 씨는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 아침마다 더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잠든 시간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밤중에 몇 차례씩 깨고, 아침에는 개운함 대신 묵직한 피로가 남는다. 김 씨는 “춥지 않게 하려고 보일러를 평소보다 세게 틀어놓고 자는데, 오히려 잠이 더 얕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겨울철에 들어서면 김 씨처럼 “충분히 잤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단순한 계절 탓이 아니라, 과도한 난방과 수면 환경 관리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숙면의 핵심 환경 요인으로 온도·습도·조도를 꼽는다. 이 세 가지 조건만 적절히 관리해도 입면 속도와 수면의 깊이가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겨울에는 낮은 기온 탓에 난방 사용이 불가피하지만,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오히려 수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과도한 난방 환경에서는 말초혈관이 과도하게 확장돼 체내 열이 외부로 원활히 방출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심부체온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아 잠들기까지 시간이 길어지고, 야간 각성이 잦아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부체온은 심장·폐·간·신장 등 주요 장기가 유지하는 체온으로, 각성 상태에서는 높게 유지되다가 잠들기 직전 자연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수면을 위해서는 저녁 시간대 심부체온이 약 0.5~1도 정도 감소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된다.

겨울철 숙면을 위한 적정 실내 온도는 18~22도로 권장된다.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손여주 교수는 “이 범위에서는 체온 조절이 가장 원활하게 이뤄져 심부체온이 자연스럽게 내려간다”며 “반대로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낮거나 높을 경우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깊은 수면을 방해하고, 수면의 연속성이 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장판이나 보일러를 과도하게 가동할수록 입면 지연과 얕은 수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습도 관리 역시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40~60% 수준의 실내 습도 유지를 권장한다. 습도가 40% 이하로 낮아지면 호흡기 점막이 건조해지고 상기도 자극이 심해져 야간 각성이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60%를 초과할 경우 곰팡이와 먼지 진드기 증식이 촉진돼 알레르기 반응이나 호흡곤란을 유발하고, 깊은 수면이 감소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생활습관 조절도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취침 1~2시간 전 38~40도의 미온수로 목욕이나 족욕을 하면 말초혈관이 확장되면서 체열이 피부로 이동한다. 이후 상대적으로 서늘한 침실 환경으로 이동하면 피부를 통한 열 방출이 촉진돼 심부체온이 서서히 감소하며, 신체가 자연스럽게 수면 상태로 전환된다.

겨울철 일조량 감소로 인한 호르몬 변화도 숙면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낮 동안 분비되는 세로토닌이 줄어들면 밤에 분비돼야 할 멜라토닌 리듬도 흐트러지기 쉽다. 낮에는 가능한 한 자연광에 노출되고, 저녁 이후에는 스마트폰이나 TV 등 청색광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침실은 어둡고 조용한 환경으로 유지하는 것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

손 교수는 “겨울철 숙면의 핵심은 심부체온이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며 “체온의 항상성이 무너지면 몸과 마음의 리듬이 함께 깨지기 때문에 온도·습도·조도 관리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면 환경 관리는 단순한 편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을 지키는 기초적인 관리 요소”라고 강조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