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느헤미야 2:5)
간절히 기도했으니 가만히 기다리면 될까요? 물론 때로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느헤미야가 ‘하나님! 성벽을 다시 세우게 하소서’, 에스더가 ‘하나님! 우리 민족을 구원하여 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가만히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회를 하면서 이 부분을 결정할 때가 가장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에 죽을 각오로 깊고 높은 산행 기도를 떠나고 땅 밟기 기도를 합니다. 이게 쉬울까요?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스더 4장 4~11절까지 말씀처럼 에스더는 사촌 오빠 모르드개로부터 수석 대신 하만에 의해 자기 백성들이 다 죽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스더 4:13~14)라는 말을 듣고, 다시 자초지종을 파악하여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왕후 에스더가 3일 동안 금식의 기한을 정해놓고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도 금식에 동참하도록 부탁했습니다.(에스더 4:15~16)
3일간 금식을 마친 이후 에스더는 누구든지 왕의 부름이 없이는 안뜰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에스더 4:11),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로 왕께 나아갔습니다.(에스더 4:16, 5:2)
왕의 부름 없이 왕에게 나아갔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일이 없었던 에스더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왕의 잔치에 ‘하만’을 초대한 후, 그 잔치 자리에서 왕에게 자신들의 민족이 하만에 의해 ‘진멸’ 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이에 격노한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준비했던 ‘50규빗’(약 22.8m) 되는 나무에 오히려 하만을 달려 죽게 하였고, 하만이 유대인을 말살하기로 한 12월 13일과 14일에 오히려 유대인들을 적대시하던 이들이 최후의 날을 맞게 되고 말았습니다.(에스더 7장~9장)
이로 인해 ‘부림절’이 생기게 된 것이고, 또한 바사(페르시아) 제국 127도에 흩어져 있던 유대민족들이 오히려 전화위복을 맞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2차 귀환이 이루어졌던 배경과 계기가 ‘에스라’가 아니라 ‘에스더’임을 말해줍니다.
기도하고 나서 편안하게 있으면 된다는 생각 자체가 오산입니다. ‘기도’ 했으면 ‘오히려 고생할 각오를 하고 행동하라’ 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금식함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 후 오늘 머리글(느헤미야 2:5)처럼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라 했던 것입니다.
저도 ‘마음은 원이로되’ 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 더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래도’인 에스겔 36장 37절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그러면 지혜까지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립보서 4:13)
느헤미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힘껏 기도하고 나아갔습니다. 느헤미야 2장 7~8절 말씀에 보면 ‘담대하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을 조목조목 요청을 하였고, 특히 방해가 있을 것을 대비해서 미리 필요한 것을 조목조목 이야기해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이는 느헤미야가 4개월 동안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기도하면서 현실을 파악했고 대안을 준비했으며 그것도 수없이 미리 시뮬레이션을 가동해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하려고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가 아니라, 좋은 것을 하려고 한다면 기도하고 준비하고 또 기도하고 준비하고 준비하면서도 이러한 행함이 옳은지 하나님께 여쭈고, 또 여쭈고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최선을 다했다면 말입니다.
오늘의 답답함과 한계만 보지 말고. 안된다고 원망만 하거나 억울하다고 탓하지 말고,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의 거룩한 목표를 가지고 비상하는 모두가 되길 소망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