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기업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저비용 고성능의 AI 모델을 개발해낸 딥시크와 올해 춘제 갈라쇼에서 춤추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등장시킨 유니트리의 공통점은 뭘까? 둘 다 중국 항저우 출신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다. 유망주로 떠오른 딥로보틱스, 매니코어, 브레인코, 게임사이언스 등 혁신 기업들 또한 본사가 항저우로, 이들을 중국에서 ‘항저우 6소룡(小龍)’이라 부른다.
항저우는 어떻게 풍광이 아름다운 관광도시에서 제2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혁신도시로 바뀌었나? 항저우의 성공 요인 세 가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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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업은 총대 메고 정부는 팍팍 밀어주기
항저우 시정부는 2015년 ‘혁신창업신천당’(創新創業新天堂)이라는 청사진을 통해 오늘의 항저우 발전을 위한 바탕을 다진다. 재정에서 정부 주도 펀드를 별도로 편성해 관내 혁신기업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에 나선다. 기업 손실의 최대 30%를 정부가 감수해준다는 초강수까지 뒀다. 이런 과감한 정책 덕분에 유니트리는 '머신 독' 개발과정에서 정부펀드 2000만 위안(약 37억 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항저우는 또 SaaS(stands for software as a service) 기업을 겨냥한 ‘클라우드 서비스 바우처’를 도입했다. 기업이 사용한 클라우드 컴퓨팅 자원을 정부가 30% 이상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 정책이 시행된 3년간 기업의 클라우드 컴퓨팅 자원 사용량은 470%나 증가했으며 매니코어(세계 최대 AI 기반 자동 모델링 기술확보)는 렌더링(3D 그래픽 처리) 비용을 업계 평균의 60% 수준으로 낮췄다.
항저우의 또 다른 혁신적 지원책에는 '목표달성 우선주의'가 있다. 기존의 지원이 연구 논문을 중점으로 했다면 항저우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우선시했다. 항저우시는 2021년 ‘중점 기술 과제 목록’을 발표했는데 딥로보틱스의 ‘복잡 지형 자율 내비게이션 로봇’ 프로젝트가 경쟁을 통해 선정되며 1억2000만 위안(약 220억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받은 게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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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재면 다 OK,블랙홀 전략
항저우에 위치한 저장대 컴퓨터학과는 매년 2000명 이상의 석박사를 배출하는데 이 중 30% 이상이 항저우에 남아 창업한다. 저장대의 지난해 세계 QS 링킹은 44위, 서울대가 41위다.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梁文峰)을 비롯한 창립팀 멤버 5명이 저장대 출신이고 딥로보틱스의 창업자 주추궈(朱秋國)도 저장대 출신이다. 유니트리의 창업자 왕싱싱(王興興) 역시 항저우 현지 대학인 저장과학기술대학 전기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상하이에 인접한 저장(浙江)성의 성도 항저우시의 현재 인구는 약 1370만명이다. 항저우시는 연평균 43만명씩 5년 내 173만명 증가를 목표로 한다. 모든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겠다는 계획이다.
현지에서 배출한 인재들을 놓치지 않음은 물론 타지 출신, 화교, 외국인 인재들까지 모두 포섭하기 위해 2020년부터 항저우시는 “시후영재계획”(西湖英才計劃)을 세웠다. ‘시후영재계획’에 선정되면 최고 1000만 위안(19억 원)의 창업자금과 500만 위안(10억 원)의 이자 보조금 지원, 300㎡의 사무실 지원 및 거주지 제공, 자녀 교육비, 의료비, 출장비 등 전방위적인 지원금을 쏟아붓는다. 이러니 난다긴다하는 인재들이 항저우로 향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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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부+대기업’형 펀드모델이 아이디어에 불을 지핀다
항저우에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운영되는 펀드 모델이 있다. 정부자금 1위안이 투입되면 8위안의 민간 자본을 유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모태펀드+직접투자’다. 이런 구조 덕분에 유니트리는 B 라운드 투자에서 정부 자본이 15%만 출자됐음에도 대형 투자기관으로부터 총 10억 위안(약 1850억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알리바바 마윈을 필두로 한 저장성 출신 상인(浙商)들은 일찍이 인공지능형 제조, 생명공학, 메타버스 등 전문 투자펀드를 형성했다. 2023년 4월 기준 항저우의 사모펀드 규모는 1조8000억 위안(약 333조원)을 돌파했는데 이 중 60%가 첨단 기술분야에 집중됐다.
항저우에 기반을 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2017년 항저우에 과학연구기관 달마원(達摩院)을 설립해 2036년까지 인공지능과 양자 공학 분야에 총 1000억 위안(약 20조)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항저우판 육룡이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20년간 쌓아온 항저우의 과감한 정부 정책지원과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 그리고 연구분야와 민간자본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다. 정부와 인재 그리고 자본 3박자가 딱 맞춰졌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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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육룡이’는 누구인가?
딥시크(深度求索): 오픈 AI의 새로운 혁신모델
고효율 저비용 대규모 모델 훈련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AI 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딥시크의 R1 모델은 초저비용으로 Open AI의 최고급 O1 모델과 맞먹는 성능을 보여 AI 훈련 비용을 99% 절감했다.
유니트리(宇樹科技):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로봇 산업에서 특히 생체모방 로봇 분야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평가받는다. B2-W 머신독을 출시해 뛰어난 동적 균형 유지 능력과 환경 적응력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중국 로봇 기술의 돌파구를 마련했으며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게임사이언스(遊戲科學): 글로벌 3A 게임 시장의 게임 체인저
그동안 미국과 일본이 독차지하고 있던 3A 게임 시장의 판도를 흔든 기업이다. 게임사이언스가 개발한 중국산 3A 게임 《흑신화: 오공(黑神话:悟空)》은 출시 첫 주에 1200만장 이상 판매됐다. 이 게임의 개발 비용은 단 6800만 달러(약 900억 원)로 《라스트 오브 어스 2》 제작비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현재 스팀(Steam) 게임 플랫폼에서 해당 게임의 유저 중 42%가 북미 및 유럽 게이머일 정도로 중국 게임 산업이 글로벌 시장의 최전선을 점유하고 있다.
브레인코(強腦科技):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대중화
브레인코는 세계 최초로 고정밀 휴대용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기 10만 대의 대량 생산을 실현했다. 브레인링크 프로 헤드셋은 비침습식(非侵入式) 고밀도 전극 배열을 활용하면서도 가격이 단 299달러(약 40만 원)에 불과하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단일 이식 수술 비용만 5000달러(약 670만 원)다.
딥로보틱스(雲深處科技): 4족 로봇기술의 글로벌 표준 재정의
딥로보틱스의 ‘절영 X20(绝影 X20)’ 로봇은 혁신적인 관절 설계와 동적 균형 알고리즘을 적용해 45도 경사에서도 초당 2.5m 속도로 이동하며 복잡한 지형에서도 98%의 통과율을 기록했다. 국제로봇연맹(IFR)은 백서에서 “4족 로봇의 성능 평가 기준이 중국 기업에 의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매니코어(群核科技): 3D 디지털 산업을 주도
매니코어는 세계 최대의 3D 모델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데이터 총량 3억 2000만 개를 넘어섰다. 매달 7780만 명 이상의 활성 사용자가 이 플랫폼을 이용한다. 자체 개발한 광자 스캐너와 AI 기반 자동 모델링 기술을 결합해 1㎡당 0.3달러(약 400원)의 저비용으로 0.1mm 수준의 정밀도를 구현한다. 테슬라 상하이 기가팩토리는 매니코어의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트윈(가상 공장)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생산라인 조정 기간을 기존 8주에서 11일로 단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매화.중국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