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국내에서 중고·리퍼폰 사업에 나선다.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지는 가운데 ‘저렴하고 안전한 중고 스마트폰’을 표방하는 리퍼폰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자 국내에서도 관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 서둘러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한국총괄 산하에 중고 스마트폰 리퍼비시 사업 운영을 담당하는 조직을 신설했다. 한국총괄 산하 조직이라는 점에서 국내 중고·리퍼폰 사업 운영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만 리퍼폰(리뉴드폰)을 판매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 같은 판매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삼성전자는 2023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에서도 리뉴드폰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관련 사업 진출 계획은 공개한 바 있다.
리퍼폰은 제조사가 매입한 중고 스마트폰 등을 직접 수리·정비해 정상가 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제품으로 일반적인 중고 스마트폰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통상 리퍼폰은 정상 가격 보다 30~50% 가량 저렴하다. 리퍼비시 사업의 대표 주자는 애플이다. 애플은 자사 정품으로 부품을 교체한 중고 아이폰의 성능을 1년 간 보장해 판매하는 제도를 운영하며 리퍼비시 스마트폰 시장을 새 먹거리로 삼았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간편보상 프로그램으로 확보한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리퍼폰 사업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갤럭시 시리즈 중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S20·S21·S22·S23 시리즈와 갤럭시 Z 폴드·플립3, Z폴드·플립4, Z폴드·플립5 등만 매입한다. 100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 신제품을 당장 구입하기는 부담스럽지만 수리 이력 등을 알 수 없는 중고 제품으로 구입하는 것을 망설이는 사용자가 새로운 타깃이다. 삼성전자는 이 사업을 통해 중고 스마트폰 매입과 판매 등 중고 스마트폰 사업 전반을 강화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리퍼폰 시장 공략을 가속하는 것은 관련 제품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페리컬 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중고·리퍼폰 시장 규모는 2034년 약 3조 7454억 원(25억 6400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중고 스마트폰의 음성적 거래가 많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당근마켓 등 공개 플랫폼에서도 활발히 거래가 이뤄지면서 중고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특히 원자재값 상승으로 플래그십 신제품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제조업체가 보증한 리퍼폰은 침체된 스마트폰 시장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고 제품은 수리 이력 등 제품 상태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꺼려지는 부분"이라면서 “삼성전자처럼 확실한 제조업체가 인증한 중고 프리미엄 제품이라면 저렴한 가격에 고가 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수요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사업을 발판으로 아프리카 등 신흥국 시장까지 갤럭시 생태계를 확대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신흥국 시장은 갤럭시 A시리즈 등 저가 모델 판매 비중이 높은데 이보다 좀 더 비싼 가격의 중고 프리미엄 제품으로 수요를 확대·전환해 수익성을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보급형 모델 물량 공세에 맞설 대안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격을 낮춘 중고 프리미엄 제품으로 저렴한 요금제를 내세운 알뜰폰 업계와 상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도 ‘윈윈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매년 신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리퍼폰 사업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