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징·집·제’에 노출된 한국의 대미 투자

2025-04-03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31조원을 투자한다고 지난달 24일 백악관에서 발표했다.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포진한 기존 생산 공장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루이지애나에 전기로 제철소도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이번 투자로 루이지애나에서 1500개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 부품·물류·철강, 그리고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 과감히 투자함으로써 연간 120만대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완성차와 부품사 간의 공급망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 언론은 이번 투자가 한국과 미국의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고 양국 간 경제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많은 서초동 변호사들과 광화문 국제통상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단단히 준비하는 분위기다. 우리 법조계가 긴장하는 이유를 요약하면, 미국 사법 시스템에서 활발하게 작동하는 ‘징·집·제’에 대한 우려다. 징·집·제는 ‘징’벌적인 손해배상(punitive damages), ‘집’단소송(class action), 그리고 ‘제’조물 책임제(product liability)의 첫 글자를 딴 약어다.

우리나라에는 없거나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징·집·제가 미국에서는 기업을 상대로 한 거의 모든 민사소송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실질적인 손해배상(actual damages)의 몇 배에 달하는 징벌적인 손해배상은 물론, 풍부한 법률 지식과 조직화된 단체 행동으로 무장한 미국 소비자들이 제기하는 사안별 집단 소송은 피고 기업에 파산을 포함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위력적이다. 게다가 미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부분 제조업 기반이라는 점은, 원고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증거개시제도’(discovery, 원고와 피고가 서로 관련 증거를 공개·공유하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미국의 제조물 책임 소송의 쓰나미에 노출될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 정부의 전방위 관세 정책과 보복적 무역장벽에 대응하는 자구책으로, 우리 기업들은 조(兆) 단위의 투자를 결정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미국 기업들이 징·집·제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시키고 내재화한 ‘소송대응 준비 상시화 시스템’을 포함한 전사적이고 체계적인 소송 대응 준비와 짜임새 있는 리스크 관리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에 투자하는 수십조원의 자금은 공장 건설을 위한 벽돌, 장비 시설, 인건비에만 쓰여서는 안 된다. 미국으로 옮겨간 우리 국부와 기업의 미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소송 대응 및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KAIST 겸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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