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우산…버리면 쓰레기, 수리하면 애착 우산

2024-07-06

“아, 이건 가능해요. 제가 책임지고 고쳐드릴게요.”

장갑 낀 손으로 여기저기를 어루만지던 모호연 작가가 드디어 진단을 내렸다. 살대가 부러져 덜렁거렸지만 이식을 받으면 멀쩡해질 수 있다고 했다. 할렐루야. 지난 3년간 서랍에서 잠자던 망가진 우산이 광명을 찾게 됐다.

“공구를 손에 쥐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반려공구>의 모호연 작가를 서울 망원시장 내 ‘수리상점 곰손’에서 다시 만났다. 본업인 글쓰기에 지칠 때 그는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의 활동가로 물건의 생애주기를 늘리는 기쁨을 만끽한다.

로맨틱가이 강동원의 첫 등장부터 선재가 솔에게 반하는 순간까지, 가장 로맨틱한 도구로 활용되지만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는 날에는 발에 차일 정도로 쉽게 버려지는 것이 우산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소모품이라는 인식 개선은 쉽지 않다. 모 작가는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많게는 4000만개의 우산이 폐기된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버려지는 우산의 금속만 모아도 1년에 에펠탑 25개를 지을 수 있단다.

“우산은 복합재질로, 복잡하고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요. 하지만 철, 알루미늄, 유리섬유 등 재질별 분류가 어렵다 보니 그냥 쓰레기가 됩니다. 자원 낭비죠.”

모 작가는 “생각보다 많이 고장 난 우산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산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작은 우양산을 13년째 쓰고 있는 그는 평소 우산을 잘 말린 뒤 잘 접어 보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산주머니를 활용해 잘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고장을 방지할 수 있다. 바닥에 뒀다가 밟혀 망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뜯어진 부위를 미리 살펴 바느질해두는 것만으로도 우산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살대가 부러지는 경우가 가장 흔한데, 실이 뜯어진 걸 그냥 두면 살대가 틀어져 쉬이 꺾이기 때문이다.

‘수리상점 곰손’에서는 우산 수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직접 방문해(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택배 접수는 받지 않는다) 우산을 맡기면 수리공 양성과정을 거친 활동가들이 진단과 수선에 나선다. 비용은 보통 5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 선. 수선비는 우산 수선 프로그램 운영에 사용된다. 혹 수리 비용이 기대와 다르다면 되찾아가거나, 기부하면 된다. 불치 판정을 받은 우산은 다른 우산을 살리는 소중한 부품으로 재활용된다. 오는 15일까지 전국 제로웨이스트숍 네트워크 ‘도모도모’를 통해 고장 난 우산을 수거한다. 우산 끝 꼭지부터 손잡이, 봉, 살대 등 버릴 것이 없다. 단, 편의점에서 흔히 파는 비닐우산은 예외다. 부품으로도 쓸모가 없다.

우산 수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은 맞는 부품을 찾는 것이다. 우산 제조사마다 부품이나 소재가 제각각이어서다. 필요한 부품 구입도 어려우니 버려지는 우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마침 한 어르신이 살대에 문제가 생긴 양산을 들고 들렀는데 동일 부품을 구할 수 없어 되돌아갔다. 활동가들이 우산 제조의 표준·규격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곳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산에는 ‘리페어 우산’ 라벨이 붙는다. 지난 4개월간 100여개의 우산이 이렇게 생명을 연장했다. 쓰레기가 될 뻔한 우산들은 이번 장마 ‘대목’에 새 주인을 찾을 예정이다. ‘수리상점 곰손’은 수선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의 연결감으로 충만하다. 모 작가는 “자기만족이기도 하지만,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뿌듯해했다.

“같은 사이즈 부품을 구해 2개의 살대를 갈아 철사로 고정하고, 바느질했습니다. 대치한 살대의 색이 달라 수리 부분이 눈에 띕니다. 다른 우산의 도움이 있었다는 흔적이니 부디 귀엽게 여겨주세요. :)”

일주일 뒤 모호연 작가의 메시지와 함께 우산을 되찾았다. 남다른 사연까지 생긴 ‘애착 우산’ 덕분에 이번 장마는 두렵지 않겠다.

“기후위기를 건너는 일상생활 기술을 나누는 공간”을 표방한 ‘수리상점 곰손’에는 각종 공구가 마련되어 있다. 5000원을 내면 음료 한 잔과 함께 3시간 동안 공구를 마음껏 활용해 망가진 물건을 직접 고칠 수도 있다. “쓸모를 잃었다고 생각했던 물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시 자원으로 만드는” 수리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모 작가는 ‘수리상점 곰손’과 함께 버리는 물건을 업사이클링하는 워크숍도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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