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K-9 베트남 수출

2025-01-29

2011년 6월 한국과 미국 사이에 ‘한국산 짝퉁 무기’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은 우리 공군 모 부대가 정비를 위해 미국으로 보낸 ‘타이거 아이’의 봉인이 뜯긴 흔적이 있다며 “한국이 무단 분해해 역설계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타이거 아이는 F-15K 전투기 동체에 내장된 야간 저(低)고도 침투장비다. 들어간 항법·표적식별 장비의 원천 기술은 미국 소유다. 다툼이 커지자 양국은 이례적으로 합동조사단을 꾸려 그해 9월 1주일간 합동조사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우리나라 이지스함의 핵심 기술인 이지스체계와 적의 공격으로부터 항공기를 보호하는 전자방해장비(ALQ-200)의 일부 부품도 미국 기술을 복제·도용했다며 트집을 잡았다. 우리 정부가 파키스탄으로 수출을 추진한 ALQ-200이 중국제 전투기에 달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미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들 외에도 국산 K1A1 전차의 사격통제장비, 다연장로켓(MLRS) 체계, 어뢰 청상어 및 홍상어 관련 기술도 포함됐다. 미국은 제3국에 판매한 군사장비에 들어간 기술을 해당 국가가 도용하거나 국외로 반출하는지를 철저히 감시한다. 동맹이라 하더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과거 미국산 무기의 모방 내지 역설계는 적잖았다. 외교 마찰로 비화한 경우도 더러 있었으나 우리 기술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000년대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의 전자전 및 항법체계, 타격체계 등 방위산업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미국이 자신들과 동등한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타이거 아이를 물고 늘어진 것도 그런 연유다. 이러니 한국산 무기를 미국과 비수교국인 공산권으로 수출하는 것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최근 국산 K-9 자주포의 베트남 수출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가 나왔다. 수출 규모는 K-9 자주포 20대로 3억 달러(약 43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K-9의 베트남 수출은 공산권 국가에 대한 첫 방산수출이자 동남아시아 진출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한국군과 싸웠다. 지금도 공산당 유일 정당 체제를 유지한다. 격세지감이다. 한편으론 미국의 묵인 내지 승인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싶다. 지난해 11월 28일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이 T-6C 훈련기 12대 중 첫 5대를 베트남에 인도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전 종전 이후 미국과의 최대 규모 무기거래였다.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 기조 속에서 향후 미국산 군사장비 구매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연 베트남과 접한 중국의 반발은 커질 거다. K-9의 베트남 수출 역시 냉엄한 국제질서 현실을 일깨우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박병진 논설위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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