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될까 불안" 성인자녀 챙긴 부모…자녀들 "감사한데 부담" [뉴 헬리콥터 부모]

2024-12-02

아들에게 의사가 되라고 한 게 내 희망을 주입한 것 같아 미안하긴 했어요. 주변을 보면 60~70%가 부모의 노력의 결과에요. 부모가 스펙이 된 세상에서 나만 안 도와주면 우리 아이만 바보를 만들까봐….

서울 소재 한 의과대학 교수인 정상현(57·가명)씨는 둘째 아들 민규(25·가명)씨가 의대에 가길 바랐다. 일부러 보직 교수를 맡아 입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규씨는 의대 진학에 실패했고 서울 내 한 대학의 화학공학과에 들어갔다. 이후 정씨는 아들의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공부를 지원했다. 하지만 민규씨는 오래전부터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현재 군 복무 중인 그는 전과(轉科)를 준비하고 있다. 민규씨는 “부모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사는 게 맞나’하는 의문이 늘 맴돌았다. 아버지 뜻대로 살려고 했던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정씨 부자(父子) 등 성인 자녀의 삶에 개입한 경험이 있다는 부모와 그의 자녀 각 7쌍을 심층 인터뷰해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한 결과, 부모들 대부분은 마음 속에 불안감·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취준생 딸의 입사지원서를 써주고 면접 스터디 정보도 챙겨줬다는 어머니 손지영(57·가명)씨는 “대학 시간표와 커리큘럼 계획까지 다 짜주다 보니 어느새 딸은 혼자선 수강신청도 못 하는 상태가 됐다”며 “그렇지만 옛날처럼 학벌만으로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계속 도와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퇴직금 5000만원을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가 전부 잃었다는 하승기(61·가명)씨는 “애가 험한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여전히 걱정된다”고 했다.

중앙일보가 성인 자녀를 둔 50~60대 부모 50명을 설문한 결과,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 돕는 이유에 대해 ‘아직 걱정되고 불안해서(12명)’, ‘주변에서 다 돕기 때문에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아서(7명)’, ‘자녀가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6명)’ 같은 답변이 전체의 50%(25명)를 차지했다.

반면에 자녀들은 양가감정을 토로했다. 아버지가 매일 출퇴근길을 태워준다는 민세경(30·가명)씨는 “잠도 더 잘 수 있고 차에서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면서도 “아빠가 데려다준다는 소문이 날까봐 직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내린다”고 말했다. 하씨의 아들(27)은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든 계기를 설명하며 “대학 1학년 때부터 부모님이 편입하라며 지나치게 간섭했다”며 “기대가 점점 부담됐고 반항하는 마음에 공부도 손에서 놓고 코인 투자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편엔 죄송하지만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20~30대 자녀 50명은 설문 결과에서 부모에 대해 대부분 ‘감사함(37명)’을 느낀다면서도 ‘미안함(10명)’, ‘부담스러움(6명)’, ‘괴로움(2명)’ 등 부정적 감정도 토로했다(중복응답). 어머니가 직접 공무원 시험 모집 요강과 직렬 등을 챙기고 분석해줬다는 김승혜(31·가명)씨는 “감사하지만 미안하고 괴로운 마음도 더 컸다. 수험생활이 길어지면서 부담과 두려움도 커졌다”고 말했다.

헬리콥터 부모의 과잉 양육이 갈등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현직 공무원인 유민현(56·가명)씨는 외아들(27)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중학교 3학년일 때부터 동아리 활동, 교내 경진대회 등 비교과 영역까지 신경 써 챙겼다. 그는 “실제로 의대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붙은 것처럼 기뻤다. 성취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부자 관계는 틀어졌다. 유씨가 아들의 세부 전공 선정부터 이성 교제, 취미 생활에까지 관여하면서다. 가출까지 감행했던 아들은 “이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성인 자녀에 대한 개입이 부모·자녀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헬리콥터식 양육을 받은 자녀는 낮은 자기 효능감과 문제 해결력, 높은 수준의 불안 등의 특성이 보고된다”고 말했다.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모의 심리적 안녕감이나 자존감 등이 훼손될 수 있다”며 “모두가 불행으로 가는 길”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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