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르면 내일 밤 자정쯤이면 대한민국의 5년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이 결정된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새 대통령은 6월 4일부터 곧장 대통령 업무를 시작한다.
역대 대통령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모셨던 고위 관료와 정치권 인물들에게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느냐고 물었던 일이 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냉소적이었다. 어떤 대통령이든 앞으로 한 달가량은 구름 위에 올라탄 듯 정서적 흥분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일단 대통령이 되면 대법원장, 장차관, 공공기관 임원 등 줄잡아 1000명 이상에 대한 슈퍼 인사권이 손안에 들어온다. 대통령의 직접 인사 명령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도합 1만여 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공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에 맞추는 임기일치법을 추진하고 있다.
6월 초순에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도 예정돼 있다. 한국은 G7 멤버는 아니지만 주최국인 캐나다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을 이미 초대한 상태다. 한국프로야구(KBO)에서 뛰던 선수가 단숨에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초청을 받아 꿈의 무대에 서는 격이다.
통 큰 당선 잔치도 준비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모두 최소 35조 원 이상의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35조 원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들에게 현금 형태로 돌아가는 돈이다. 당장 호주머니에 수십만 원씩 돈이 꽂히는데 새 대통령이 싫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공약을 이행하려면 과감하게 허리띠도 풀어야 한다. 정부 내부에서는 내년도 700조 원 본예산 시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적 흥분은 길어야 한 달 남짓이다. 최근 만난 금융계의 한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되고 4주 정도 지나면 그때부터 ‘대통령 청구서’가 날아오기 시작하더라.”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를 스테이크 접시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다. 일명 ‘줄라이 패키지(7월 일괄 통상 협상)’를 내놓기까지 고작 한 달 남짓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나라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25%를 철수하는 결정을 내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결정을 엉뚱하게 해석하면 미중 전쟁의 전장이 대만이 아닌 한국이 될 수도 있다. 후보 시절에는 이런 시나리오를 두고 ‘외계인이 지구 침공하는 소리’ 아니냐고 웃어넘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과 영토를 수호해야 하는 국가 지도자가 이런 안보관을 유지한다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줄라이 패키지가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어떤 합병증을 남길지도 미지수다. 반도체·자동차·철강 같은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이 불과 한 달의 협상 결과로 경쟁력을 상실할 수도 있어서다. 국내 대기업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한 임원은 “미국이 한국만 콕 찍어 원화값을 올리는 ‘미니 플라자 합의’를 요구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국 공장을 뜯어내 미국으로 옮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 정부나 정당에서 원·달러 환율의 장기 추세 하락에 대응한 경제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집값 문제 역시 새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한국은행이 올 들어 2차례나 기준금리를 내렸고 여기에 수십조 원 이상의 재정지출이 풀리면 그 유동성은 결국 부동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서울 강남권에서는 최근 잇달아 신고가 거래가 쏟아지고 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면 집값이 뛸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시장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재정 건전성 악화를 빌미로 한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다. 기축통화국도 아니면서 수출 중심 경제구조인 한국에 신용 강등은 KO 펀치처럼 뼈아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상 신흥국들은 신용등급 강등 이후 1%포인트 안팎의 성장률 마이너스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대통령이 누가 됐든 앞으로 한 달을 ‘비상 경제 대응 기간’으로 선포하고 좌우·민관을 가리지 않는 최선의 경제 솔루션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잔치는 그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