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더중플 - 6.3 대선주자 탐구
6.3 대선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 나라를 맡겠다는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들이 언제 어떻게 정치 무대에 올랐는지, 정치를 하기 전에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기억하시나요? 세월이 바꾸는 건 강산만이 아닙니다. 노래 가사처럼 사람들은 모두 변하고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추천!더중플은 ‘6.3 대선주자 탐구(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82)’입니다. 그들의 사상과 전략, 공약, 지지 기반 같은 것에 천착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탄생과 성장과 사랑과 투쟁의 이야기, 즉 땀냄새나는 삶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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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탐구-김문수⑩
1999년 국회 귀빈식당.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논의하던 세 명의 남성들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온 난입자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 자리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아니 은밀한 공간이어야 했다. 추가경정 예산 금액과 항목을 놓고 마지막 ‘주고받기’가 이뤄지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공간의 점유자들이 각 당을 대표하는 원내총무였던 것도 그래서였다. 난데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 고위급 회담의 평온을 깨뜨린 이는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이하 경칭 생략)이었다.
김 의원, 당신 계수조정 소위원회 소속이잖아. 거기서 해결할 것이지 왜 여기 와서 이러는 거야?
원내총무들이 핏대를 올렸다. 하지만 김문수는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아이들이 밥을 굶고 있는데 나라가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집니까?

때는 외환위기 직후였다.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졌고 가장들은 줄줄이 직장과 월급을 잃었다. 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존심을 내던지고 허리를 굽히면서 애걸하고 다녔다.
아이들은 더 힘들었다. 영문도 모른 채 정든 집에서 쫓겨나 월세방을 전전해야 했고, 정도가 심한 경우 점심 도시락도 싸가지 못했다. 점심시간마다 배를 움켜쥔 채 눈물을 훔쳐야 했던 아이들을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이던 김문수가 주목했다.
보좌진이 딱하다는 듯 그의 의문에 답했다.
의원님, 뻔하죠. 애들은 투표권이 없잖아요? 표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누가 발 벗고 나서려고 하겠어요?
김문수는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고깃근은 고사하고 곡물조차 없어 멀건 갱죽으로 연명하던 그였다. 그는 당장 실태 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결식아동이 15만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수치를 받아들었다. 그는 팔을 걷어붙였다. 결식아동 지원 예산 증액을 위한 투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문제는 정부였다.
교육부가 난색을 보였다. 여당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 의원, 취지는 알겠는데 다른 데 써야 할 돈도 많으니 일단 책정된 예산안 한도에서 써봅시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성금 모금 운동 같은 걸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당시 상황에 대해 김문수가 훗날 회고했다.
그 결과물이 원내총무 회담장 급습이었다. 그의 돌발 행동에 각 당 수뇌부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언론이 그 사실을 알고 지원 사격에 나서자 그들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결식아동 지원예산은 75억원이 증액돼 201억원으로 확정됐다. 요구액 281억원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엄청난 성공이었다. 여느 의원이었다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며 뒤돌아선 뒤 홍보 자료 만들기에 바빴을 거다.
하지만 김문수는 만족하지 않았다. 15만명을 다 구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박지원 의원, 유시민 작가의 표현대로 김문수는 ‘독종’이었고, 백스텝(뒷걸음질)을 모르는 남자였다. 그는 투쟁의 기치를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투쟁 강도를 더욱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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