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사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이 공개된 가운데, '비철금속 제련분야' 기업 고려아연과 영풍이 경영 실적표가 크게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풍이 고려아연 인수를 추진하는 가운데 관심이 쏠린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 3조8328억원으로 전년동기 2조3754억원 대비 61.4%(1조4574억원) 늘었다.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이다. 이는 영풍 1분기 매출 5718억원의 7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별도기준 매출의 경우 고려아연이 2조3886억원으로 1714억원에 그친 영풍 실적의 14배에 달한다.
수익성에서도 고려아연은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271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845억원 보다 46.9%(866억원) 증가한 금액이다. 1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두번째로 높은 영업이익이다. 별도기준 영업이익 또한1907억원에서 2727억원으로 43%(820억원) 급증했다.
반면, 영풍은 3년 연속 영업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영풍의 1분기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563억원으로 작년 1~3월 영업손실 432억원과 비교해 적자 규모가 30.3%(131억원) 커졌다. 별도기준 영업손실도506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101억원과 비교해 적자 규모가 5배나 불어났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과 영풍의 실적 희비가 엇갈린 배경으로 다양한 요소를 꼽는다.
먼저 시장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 능력이다. 고려아연의 경우 특정품목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각 부문별 기술 역량 강화에 투자를 집중했다.이른바 최윤범 회장 등 경영진의 경영판단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반면 영풍은 성장동력 투자에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영진의 경영 역량 부족에 오너중심 경 영에서 선제적 투자 등 체질개선 노력자체가 크게 부족했다는지적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에 집중하면서 주력사업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에 대한 투자와 관심 등 기술력의 차이도 한 몫했다는 평가다. 나아가 제련기업의 오랜 숙제인 환경 리스크에 대한 대응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고려아연은 세계 유일의 '아연·연·동 통합공정'을 운영하는 덕분에 아연과 연정광에 포함된 극소량의 희소금속 12종을 추출하는 능력을 갖췄다. 올해 희소금속 회수율을 품목별로 20~30% 높이는 노력과 기술 혁신, 중국의 수출통제에 따른 세계시장의 가격 급등세가 함께 작용하면서 수익성이 대폭 신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 핵심소재로 쓰이는 안티모니, 반도체 기판과 디스플레이에 활용되는 인듐 등 전략광물의 1분기 판매 실적이 900억원으로 전년동기 290억원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고려아연의 별도 매출총이익의 20%를 전략광물이 기여할 만큼 호실적의 강력한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금·은 등 귀금속의 매출도 가격 상승세와 맞물려 한층 확대됐다. 고려아연의 금 부문 매출은 2024년 1분기 1548억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3581억원으로 2배 넘게 불어났다. 은 역시 5014억원에서 7471억원으로 49%(2456억원) 급증했다.
영풍은 아연괴 제련부문 매출 비중이 84%로 과도하게 생산품목이 편중됐다. 이는 제련수수료(TC) 급락, 아연 가격 약세 등으로 인한 실적 하방 압력을 상쇄하지 못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기에 물환경보전법 위반으로 올 2월부터 4월까지 58일간 석포제련소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으면서 매출과 수익성이 악화됐다.
2000년대 들어 신성장동력 육성 차원에서 반도체·전자 부품 제조사들을 잇달아 인수했지만 이마저도 성적표가 신통찮다. 장세준 부회장이 경영하는 코리아써키트의 경우 올 1분기 연결매출 3546억원, 영업적자 17억원, 분기순손실 22억원을기록했다. 시그네틱스, 영풍전자 등의 계열사도 순손실을 겪는 상황이다.
두 기업의 실적이 엇갈리면서 영풍이 사모펀드 MBK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기업가치 제고'란 명분도 크게 퇴색하고 있다는 게 IB업계의 평가다.
이경민 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