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중도 보수정당이다. 가치나 신념을 중시해 선거 패배를 감수할 수 있는 이념 정당이 아니다. 민주당은 다른 종류의 정당이다. 정당 이론가 앤서니 다운스식으로 표현하면, 정책 실현을 목적으로 선거에 승리하려는 정당이 아니라 선거 승리를 위해 정책을 선택하는 정당이다. 가난한 시민들의 삶을 보살피는 일을 다른 무엇보다 중시하는 진보정당과 달리 중산층 감세와 기업 활력, 경제성장을 우선시하겠다는 정당이다.
민주당은 중도 보수·실용주의
의원들의 행동 양식도 흥미롭다. 당의 승리를 위해 의원직을 희생할 의원은 없다. 당은 패배해도 나는 의원이 되어야 한다. 당이 아니라 내가 주목받아야 한다. 경쟁하는 개인 의원들이 있을 뿐, 보통의 정당에서 보듯 이념적 가치나 지향에 따른 계파들의 구성체가 아닌 정당이 민주당이다. 친명과 비명은 있지만, 어느 쪽이 진보이고 개혁이고 보수인지 알 수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 정당 안에 성장과 분배, 평화와 동맹, 평등과 자유, 생태와 개발 등등 당내 다원주의를 보여주는 계파가 없다.
그런 게 없어서 중도이고 보수라면 사실 그것은 집권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혜택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당이 보수정당이 되든, 진보정당이 되든 의원들은 그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위성 정당을 만드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지도 묻지 않는다. 그런 질문에 회피적인 게 일반적인 당내 정서다. 반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이라는 게 아니다. 윤리나 도덕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무윤리, 무도덕, 무이념의 실용주의는 당대표가 자신을 실용주의자라 말하기 전에 이미 민주당의 문화였다.
그런데 리더십과 당원, 즉 당의 최상층과 최하층의 차원에서 보면 민주당은 완전히 다른 정당이다. 진보적인 정당의 경우 이념적 가치나 정책적 지향을 견지하게 하는 보루는 원외의 중앙당과 상근 당 조직에 있다. 그렇게 보면 중앙당과 당 관료의 영향력이 미미하고, 원내 중심의 민주당은 중도 보수정당의 전형적 특징을 닮았다. 의원의 자율성이 큰 엘리트 정당인 것도 비슷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선 당대표가 당원을 동원해 당의 공천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이들 열성 당원에 의원들이 쩔쩔매는 것도 흥미롭다. ‘1인 지배 대중정당’이라는 이 특징은 새롭다. 실용 정당이고 원내 정당이고 엘리트 정당이고 중도 보수정당인데 그러면서 대중정당이다. 돈과 표를 당원에 의존하는 서구식 대중정당(mass party)은 규율이 강하고 중앙집권적이며 이를 당의 공식 조직이 뒷받침한다. 민주당식의 대중정당은 특별하다. 당 조직도 약하고 규율도 약하고 관료제도 약한데, 그런 역할을 당대표와 직접 연결된 팬덤 당원이 대신한다. 그들이 당을 이끌고 규율을 부과하며 돈도 표도 조직한다.
팬덤 정당과 윤리·덕성의 문제
역설적으로 이 모든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이른바 ‘친문’으로 불리는 당내 반대파다. 그들은 순응적이다. 정확히는 기회주의적이다.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객관적인 의미로 그렇다. 그들은 팬덤 리더나 팬덤 당원을 거스르지 못한다. 당대표의 권위나 신뢰감 때문이 아니다. 두려움 때문이다. 그들은 당대표를 진심으로 증오한다. 당대표 역시 자신들을 진심으로 증오한다는 것을 잘 안다. 검찰과 내통하는 반민주 세력이자 관용할 수 없는 집단으로 여긴다는 것도 안다.
당대표가 통합을 말하며 개별적으로 비명과 친문을 분해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집단으로 행동하거나 집단으로 목소리를 낼 의지는 없다. 무슨 정치를 왜 하려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려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바도 없다. 과거 탈원전·정규직화·노동 존중·증세·분배를 말할 때는 진보임을 내세웠지만, 이제는 보수로 바뀌었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말을 잃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결심이 없다. 당을 어떻게 다르게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 대안도 없다. 그들은 독립 변수가 아니라 끌려다니는 종속 변수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어떤 정신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에토스(ethos)’라고 정의했던 윤리나 덕성의 문제다. 막스 베버가 “정치의 윤리적 고향”이라고 불렀던 문제다.
필자가 보기에 친문을 지배하는 어떤 정서 같은 게 있다면 소박한 기회주의다.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와 비슷하다. 정치가가 마땅히 견지해야 할 적극성이나 책임 의식 같은 것은 없다. ‘성격이 강한 야심가의 정당 지배’는 그 결과다. 팬덤 정당은 그들이 감수해야 할 운명이다. 막스 베버라면 그저 우애나 도모하고 살 사람들이 왜 정치하냐고 따져 물었을 것이다. 친문도 비명도 양념이 되었다. 민주당의 시대정신은 이재명이다.
